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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가해, 성소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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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가해, 성소주일] 요한 10,1-10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하원시간이 되면 유치원 앞은 자녀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로 북적입니다. 그런데 이 때 참 신기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모두 같은 원복을 입고 같은 모자를 쓰고 같은 가방을 메고 있는데도, 부모들은 멀리서부터 자기 자녀를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자기 아이 이름을 불러대는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부모의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듣고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건 아마 ‘사랑의 힘’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기에 그 아이가 다른 누구보다 특별해보이고, 자녀들도 부모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기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겁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기적입니다.
오늘은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목소리를 알아듣고 순명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다짐하는 ‘성소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당신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야만 구원과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설명하십니다. 양은 참 손이 많이 가는 동물입니다. 시력이 안좋아서 앞을 제대로 못 보고 냄새도 잘 못 맡습니다. 게다가 힘도 약하고 한 번 넘어지면 제 힘으로 일어나지도 못해 맹수들에게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지요. 그런 양들이 그나마 갖고 있는 장점은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먹이고 보살피는 목자의 음성과 자기를 희생시켜 제 잇속 채울 생각만 하는 강도의 음성을 잘 듣고 식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관점인지 오늘 복음에서 ‘알아듣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아쿠오’는 단순히 귀에 들리는 소리를 수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경청하고 식별하며 이해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하지요. 이처럼 귀를 바짝 세우고 죽기살기로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들의 모습에 비추어 주님 목소리를 듣는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님 목소리를 잘 알아들으려면 먼저 그분께서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 ‘방식’을 알아야 하고, 마음과 입으로 침묵하며 그분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소음’에 방해받지 않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가 차분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분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뜻이 들리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부르시어 하느님 나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런 점을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목자의 모습에 빗대어 설명하시지요.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밤 시간에 양들을 거대한 ‘공동 우리’에 넣어두고 함께 관리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둑들과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안전하게 지키는데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목자는 자기 양들을 울타리 밖으로 따로 불러냅니다. 양들이 물을 마시고 풀을 뜯을 수 있는 장소로 데리고 가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양들의 입장에서는 목자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그 때가 너무나 기쁘고 설레는 순간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목자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기에 그렇고, 그를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시원한 물과 맛있는 풀들이 충분히 있을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어떻게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양들 중에 자기 양을 분간해낼 수 있을까요? 자기 양 중에 ‘흠 없는 양’은 하나도 없기에, 각각의 양이 지닌 단점과 부족함이 서로 다르기에, 그것을 통해 모든 양을 알아보는 겁니다. 그런 점이 양들로하여금 자기가 알아들은 목자의 음성을 따르게 합니다. 부족하고 약한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기 양 떼’로 품어준 목자의 큰 사랑과 희생을 잘 알기에 그의 목소리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도 그렇게 당신 말씀을 듣고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목자가 앞장서서 가고, 양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구원의 행렬’이 시작됩니다. 목자가 양들보다 ‘앞장서’ 가는건 양들에게 닥쳐올 시련과 고난을 미리 마주하여 그것을 이겨낼 방법을 강구하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위함입니다. 즉, 목자는 사랑 때문에 자기 양들보다 ‘매를 먼저 맞는’ 사람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양들은 목자를 따라가는 그 길에서 시련과 고통을 마주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본 목자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중간에 힘겨워 넘어지거나 다치더라도 목자가 자기를 일으켜주고 상처를 치유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목자만이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일용할 양식으로 먹여살리며, 여러 위험으로부터 구해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목자의 모습으로, 자기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는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주님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뒤를 잘 따라가야만 그 길의 끝에서 구원을,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하느님 나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문’에 빗대어 설명하십니다. 주님께서 되고자 하시는 ‘문’은 안과 밖을, 즉 구원을 뜻하는 하느님 나라 ‘안’과 그 ‘바깥’에 있는 세상의 멸망을 철저히 구분하고 분리하는 ‘벽’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라면 누구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당신 말씀을 알아듣고 따름으로써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친교’의 장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즉 그분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따름으로써만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그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탐욕에 마음이 휘둘려 세상 것들에 한 눈 팔지 말고,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악마의 속삭임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그분 말씀을 듣고 따르는 그분의 참된 양이 되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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