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7일 (월)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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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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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4-26 ㅣ No.189301

조욱현 신부님_“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1. 부활하신 주님, 참된 목자이신 그리스도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착한 목자”로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따뜻한 비유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을 목자로 고백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이 고백 안에는 보호자, 인도자, 생명의 근원, 아버지의 돌봄이라는 깊은 신앙 체험이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라 부르신 것은, 단지 인도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백성을 돌보시는 그 사랑이 당신 안에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며, 동시에 양우리의 문이시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생명의 풀밭에 들어갈 수 없다.”(Commentarius in Ioannem, 10,1-3)

 

2.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구원의 유일한 통로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의 문이다.”(7절)라고 하실 때, 그분은 단순히 입구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드러내신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즉,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Mediator)이시며, 그분을 통하여서만 우리는 참된 생명을 얻는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문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 들어가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In Ioannem, cap. 10, lect. 2) 따라서 ‘문’은 진리와 사랑의 길이며,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신 순명, 겸손, 그리고 자기 희생의 길이다.

그 문을 통하지 않고, 곧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지 않고, ‘양우리’에 들어가려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1절) 오늘 복음의 경고는 명확하다. 진정한 목자는 십자가를 통하여 문으로 들어가는 이이며, 거짓 목자는 권력이나 명예, 탐욕으로 담을 넘어 들어가는 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덧붙인다. “문을 통하지 않고 들어오는 자는,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는 자다. 그리스도의 문은 사랑과 희생의 문이다.”(Homiliae in Ioannem, 59,2)

 

3. 도둑과 강도: 생명을 파괴하는 거짓 목자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10절)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대한 경고다. 하느님의 백성을 지배와 폭력으로 다스리려는 사람들, 진리를 왜곡하여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거짓 지도자들이 바로 “도둑과 강도”다. 구약의 예언자 에제키엘은 이미 이렇게 탄식했다. “너희 목자들은 자신만 먹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않았다.”(에제 34,8)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새로운 목자,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나의 양 떼를 찾아내어 그들을 먹이리라.”(에제 34,11-1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좋은 모범이 아니라, 하느님 약속의 완성, 곧 하느님의 목자됨의 실현이시다.

 

4. “나는 생명을 주러 왔다.”: 풍요로운 생명, 파스카의 선물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10절)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단순한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파스카 생명이다. 이는 세례와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이 생명은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요한 10,11)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여신 ‘문’의 진정한 의미다. 그 문은 피로 물들어 있으며, 사랑으로 열려 있다.

 

5. 참된 목자의 표징: 사랑 안의 순명

 

참된 목자는 자기 것이 아닌 양 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주님의 양을 “자신의 것처럼”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존재로서” 돌본다. 사제 교령은 이렇게 가르친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목자적 사랑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봉사한다.”(14항)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사목직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는 ‘대리직’이다. 이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십자가적 사랑이다.

 

6. 성소 주일: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를 보내주소서.”

 

오늘은 성소 주일이기도 하다. 교회는 이날, 모든 사제와 수도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주님은 지금도 젊은이들을 부르고 계시다. 그 부름은 두렵고 불확실해 보이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이에게는 참된 자유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권고한다. “만일 그대가 목자의 길을 두려워한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분께서는 먼저 가신 길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분 안에서 두려움은 사랑으로 변한다.”(Sermo 46,1)

 

7. 결론: 주님, 우리를 당신의 문으로 이끄소서.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9절) 이 문은 닫힌 문이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열린 문이다. 그리스도는 양 떼의 문이시며, 동시에 모든 목자가 통과해야 할 시험의 문이시다. 그 문은 진리와 사랑, 희생과 봉헌의 문이다. 오늘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다. 주님께 나아가려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길 수 있도록, 특히 젊은이들이 기꺼이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김건태 신부님_참 목자이신 주님

[말씀]

 

■ 제1독서(사도 2,14ㄱ.36-41)

 

베드로의 죄의 사함을 위한 호소 앞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유다인들은 회개를 결심하며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이렇게 성령의 이끄심으로 탄생합니다. 진리 앞에 마음의 문을 연 모든 이가 구원의 길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 제2독서(1베드 2,20ㄴ-25)

 

예수님을 청중들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메시아는 도살장으로 끌려가신 어린양이었다고 선포합니다. 이렇게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목자가 어린양처럼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신자들이 가슴에 담고 있던 생각을 들추어 강조합니다. 사랑으로 받아들인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믿는 모든 이가 자기의 양떼를 위해 희생된 참 목자를 중심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구성할 것입니다.

 

■ 복음(요한 10,1-10)

 

바빌론 유배생활 중 예언자 에제키엘은 이스라엘의 사악한 목자들,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갔던 백성의 지도자들을 소리 높여 질타했습니다. 목축 전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이 표상을 빌어 예수님은 에제키엘이 예고했던 참 목자로서 당신 자신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문”, 양떼가 생명과 자유를 얻어 누리기 위해 통과해야 할 문, 양떼에게 해를 끼칠 “도둑과 강도”가 넘어서지 못하게 막을 “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새김]

 

착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어 고백하는 신약의 신앙공동체는 구약의 공동체와는 달리 온갖 시련과 박해 가운데서도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공동체입니다. 직업의 귀천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부활 신앙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 보입시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닮은 많은 일꾼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주고받음에 있어 이해타산이 절대적 법칙으로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현실 속에서도 그저 양보하고 내주고 희생하는 삶을 기뻐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그런 ‘제2의 그리스도’ 말입니다.

 

성소주일인 이날, 미래의 교회에서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으로 인성과 지성과 영성 교육을 통해 사목자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신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기도와 성원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7) 

 

'목자를 따라가는 양들이 되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요한10,1-10)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양들의 목자다."(요한10,1-2)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10,7.9) 

 

'양들의 문이신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 

 

오늘 독서와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2,36.38)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1베드2,24) 

 

'부활 제4주일'인 오늘은 '제63차 성소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제와 수도자와 선교사의 성소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날'입니다. 

 

요즘 사제와 수도자와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사제 성소자의 수도 15년새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출산률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와 청년층 감소도 하나의 큰 원인이 되겠지만, 또 다른 원인은 없을까? 

 

저는 또 다른 원인이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자기 성소를 기쁘게 살지 않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가 사제성소를, 수도자가 수도성소를, 선교사가 선교성소를. 그리고 결혼성소를 충실하게, 기쁘게 살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양들의 문이시며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잘 그리고 기쁘게' 따라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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