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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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4월 30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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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6-04-29 ㅣ No.189351

2026년 4월 30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삶에 감사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함이 크게 보이면서 사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지를 계속 생각했었습니다. 부모님께 따지고 싶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어요?”라고 말입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부족함을 안고 태어나 앞으로 계속 힘든 삶을 살 것만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아마 이때가 사춘기 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원망하며 성당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떠했을까요? 성당에 나가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고민이 해결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더 힘든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이든 다 부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행동과 선택을 통해 스스로 존재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존재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입니다. 인간은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먼저 존재한 다음에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의해 우리는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사랑 때문입니다. 존재하지 않음보다 존재함이 더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자기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 이렇게 우리는 계속 성장하게끔 맞춰 있습니다. 그런데 멈추려는 나약함이 자주 등장합니다. 다시 마음을 잡아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요 주님이시면서도 종의 모습으로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라는 말씀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지셨으니,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겸손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적이고도 강력한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아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실천하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제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누군가와 한 식탁에서 빵을 나눈다는 것은 깊은 신뢰와 생명의 연대, 평화의 언약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발꿈치를 치켜듭니다. 주인을 향해 뒷발질하는 폭력적이고 배은망덕한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20)

 

제자들이 곧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거나 부인할 연약한 존재들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신뢰하시며 하느님의 대리자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존재 차체에 의미를 가지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삶은, 목을 조일 게 아니라 만져줘야 하는 것(레이 브래드 버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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