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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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성소주일 "한 아이가 신부님 하고 달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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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루카 [achim9202] 쪽지 캡슐

2026-04-30 ㅣ No.189367

왜, 사람들은 사제에게 마음을 열까요?

요한 10,1-10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서 성공하라는 목소리,
뒤처지지 말라는 목소리,
더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
상처받지 않으려면 마음을 닫으라는 목소리도 듣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목자의 목소리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가
자기들을 해치러 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살리러 오는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 마음에 오래 머무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무리로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하나 부르십니다.
이름을 부르십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고 부르십니다.

성소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성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특별한 사건만이 아닙니다.

성소는
나를 아시는 하느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일입니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 목소리를 듣고
조금씩 걸음을 옮기는 것,
그것이 성소입니다.

 

마리아사제운동창설자 스테파노 곱삐신부님과함께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성소주일이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사제성소, 수도성소를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교회에는 사제가 필요합니다.
수도자가 필요합니다.
복음을 위해 온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성소의 시작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목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사제도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수도자도 지칠 수 있습니다.
신자도 세상의 목소리에 끌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주일은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날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시 묻는 날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목소리를 따라 살고 있는가.


스테파노곱삐신부님과함께


영화 「스타워즈」에서
오비완 케노비 역할을 했던
알렉 기니스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그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사제 역할을 맡아 영화를 촬영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제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는 검은 수단을 입고 있었습니다.

촬영 중간에
네 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는 사제로 분장한 그대로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기차역 호텔의 숙소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광장에서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병정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그를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신부님!”

아이는 아무 의심 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알렉 기니스는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며
무어라 쉴 새 없이 말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말 사제인지,
배우인지,
외국인인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그를
“신부님”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믿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평화롭게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는
갑자기 말했습니다.

“신부님,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울타리에 난 구멍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알렉 기니스는
그 아이가 사라진 빈자리에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그 순간을 떠올리며
가톨릭 사제직의 힘과 신비를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 아이는
그 배우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신부님’이라는 이름 안에 담긴
어떤 선함, 어떤 안전함, 어떤 거룩함을
믿은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성소주일에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제직이 무엇인지
아주 단순하고 깊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 손을 잡으면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성지에 있다 보면
저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에게도 낯선 사람이고,
그들에게도 저는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가정의 어려움을 말합니다.
오래 품고 있던 불안과 슬픔을 꺼내 놓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픈 곳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신부님, 기도 좀 해 주세요.”

어떤 분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그 순간마다
저는 자주 놀랍니다.

‘이분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마음을 열까.’

사실 그분들은
저 이상각이라는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제 성격이 어떤지,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제가 낯가림이 얼마나 심한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도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제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제 안에서
예수님의 손길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제직의 신비입니다.

 





사제는 자기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서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사제에게서
완벽한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눈길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위로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자비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사제는
늘 두렵고도 감사한 자리입니다.

한 번은
어떤 어린아이가 엄마를 따라
성지에 왔습니다.

그 아이가 저를 보더니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 사람이 예수님이야?”

참 순수한 말입니다.

웃음이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웃고 지나갈 수만은 없는 말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사제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제에게
예수님처럼 바라봐 주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처럼 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처럼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처럼
죄인에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니 사제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강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당을 잘 운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사제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압니다.
양의 이름을 압니다.
양의 상처를 압니다.
양이 두려워하는 길도 압니다.

그리고 앞장서 갑니다.

뒤에서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길을 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사제는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먼저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길을 먼저 걸어가고,
회개의 길을 먼저 걸어가고,
용서의 길을 먼저 걸어가고,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제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사제는 문이 아닙니다.

진짜 문은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사제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머물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사제의 손을 잡고 왔다가
마침내 예수님의 손을 붙잡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사제의 위로를 듣고 왔다가
마침내 예수님의 자비를 만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사제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왔다가
마침내 자기 삶 안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문이신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작은 문지기와도 같습니다.

문지기는
자기에게 사람을 붙잡아 두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 줍니다.

“저분께 가십시오.”
“예수님께 가십시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제의 소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마지막에
아주 아름다운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우리를 억누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두렵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빼앗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것도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게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삶을 빼앗기는 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붙잡히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붙잡히면
내 삶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집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내가 살아납니다.

사제성소도 그렇습니다.
수도성소도 그렇습니다.
혼인성소도 그렇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길이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길은
언제나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성소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성소는
기도 안에서 자랍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성소가 하느님의 선물이며,
교회 전체가 지속적이고 겸손한 기도로
성소를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제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정에서 나옵니다.
기도하는 공동체에서 나옵니다.
성모님께 의탁하는 마음 안에서 나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고,
제 동생도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희 부모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녀가 하느님께 봉헌되기를 바랐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께 기도해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래서 사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사제가 먼저 기도해야 하고,
신자들도 사제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제는 혼자 사제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도가 사제를 붙들어 줍니다.

신자들의 기도가
사제가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때로는 사제가 지치고,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사제를 살리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교회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오늘 성소주일에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좋은 사제가 되라고만 바라지 말고,
좋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성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 가정에서도
당신을 따르는 사람이 나오게 해 주십시오.”

“성모님,
우리 자녀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가
교회의 미래를 키웁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느냐.

세상의 목소리는
크고 빠릅니다.

그러나 목자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깊습니다.

세상의 목소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목자의 목소리는
우리를 살립니다.

세상의 목소리는
우리를 비교하게 만들지만,
목자의 목소리는
우리 이름을 불러 줍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안다.”
“나를 따라오너라.”

성소주일은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 날입니다.

사제와 수도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생명으로 부르십니다.
기도로 부르십니다.
봉헌으로 부르십니다.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사제로, 수도자로
당신을 더 가까이 따르도록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을 듣는 젊은이들이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부르심을 막지 않는 가정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 부르심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하소서.

세상의 많은 소리 가운데서도
우리를 살리시는 목자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제들이
당신의 마음을 닮게 하시고,
당신의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 가정 안에서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시고,
사제성소와 수도성소가
새롭게 피어나게 하소서.

목자의 목소리를
가장 깊이 알아듣고 따르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가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 한 아이가 "신부님"하고 달려왔습니다. 성소주일|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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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이상각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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