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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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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노동자 성 요셉>(5.1)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13,55)
'땀의 찬가인 노동!'
오늘 복음(마태13,54-58)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는 말씀'입니다.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 행하신 예수님의 활동을 '예수님의 공생활'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활동인 '땀의 찬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13,54ㄷ-55ㄱ) 라는 예수님 고향 사람들의 놀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보지 못하고 노동자의 아들로만 보았습니다.
성모성월이며 가정의 달, 생명의 달인 5월 첫 날은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신 노동자 성 요셉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 요셉은 직업이 목수인 노동자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목수의 아들이셨고, 노동자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15,1) 하느님 아버지의 창조 활동을 전하는 오늘 독서(창세1,26-2,3)가 이를 말해주고 있고, 아들 예수님의 땀의 찬가인 공생활이 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땀의 찬가인 노동!'
'노동'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 신성한 구원 활동'입니다. 그런데도 신성한 의미를 지닌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있고, 노동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무시 당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과 세상 구원을 위해 정말 열심히 땀을 흘리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열심히 나와 너 그리고 모두의 생명을 위해 땀 흘리는 노동자들이 됩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완수하여 마침내 악속된 영원한 생명의 잔치에로 함께 들어가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절)라고 시작한다.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였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놓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2절). 아버지의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머무는 친교를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쫓겨남도 없고, 멸망함도 없는 참된 거처를 가지게 된다. 곧 하느님 당신 자신이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In Io. Evang. Tract. 67,2).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믿음과 사랑 안에서 준비하는 삶은, 단지 미래의 보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서 그 거처를 짓는 행위이다. 주님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3절)라고 약속하신다. 그분이 곧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이렇게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이는 더 이상 죽음 안에 있지 않고, 그분과 함께 거처하게 된다.”(In Ioannis Evangelium, lib. 9). 곧, 우리의 거처는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분 안에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완성된다.
토마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6절). 여기서 길은 거룩한 삶, 진리는 교회의 신앙, 생명은 영원한 행복을 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나는 길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리이다. 나를 알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와 함께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In Io. Evang. Tract. 69,2). 즉, 예수님은 단순히 길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니라, 길 그 자체이시며, 우리가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교회는 이 진리를 끊임없이 선포해 왔다. 교회 헌장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간다.”(14항). 우리가 아버지께 도달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랑의 행위로써 길을 걷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성 이레네오가 말하듯이,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그리스도는 이 길과 진리와 생명의 원천으로 우리를 아버지께 인도하신다. 우리는 종종 제자들처럼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느낀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길, 진리, 생명으로 오셨다. 우리의 불안을 믿음으로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길을 생명으로 이끄시어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노동하는 인간 오늘은 노동자의 수호자 성 요셉 축일입니다. ‘성 요셉 축일’ 하면 3월 19일이 우선 떠오르지만, 오래전부터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국제적 노동 운동을 존중하여 비오 12세 교황께서 1955년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신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본래 이날은 ‘메이 데이(May Day)’ 또는 ‘국제 노동자의 날(International Workers’ Day)’이라 불렸으며, 국내에서는 이날을 그동안 ‘근로자의 날’로 불러왔으나, 올해부터는 이날의 의미를 되살려 ‘노동절’로 격상하여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 파업 집회를 연 ‘헤이마켓’ 사건이 이 기념일 설정의 기초가 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한국에서는 1958년 대한노동총연맹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고, 1963년 4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4년부터는 일자를 수정하여 5월 1일로 기념해 오다가, 결국 그 이름까지 ‘노동절’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다소 늦기는 했어도, 인권 존중 차원에서 국제적이며 사회적인 흐름을 수용하여, 성 요셉을 노동자의 수호자로 지정하여 이날을 기념하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회칙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노동을 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하고, 과학과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에 이바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한 가족인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적, 도덕적 수준을 끊임없이 들어높이는 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안에 창조되었으며, 땅을 다스리도록 그 안에 안배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초부터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충고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2테살 3,10).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목수 집안에서 어떻게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지닌 자녀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 섞인 질문이라 하더라도, 복음서는 분명히 청중의 입을 빌려 예수님이 노동자의 아들임을 밝히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수님도 노동을 하셨다는 사실이 전제됩니다. 이는 마치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이 몸소 일하셨다는 기록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 이처럼 노동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음을 드러내는 구체적이며 의미 넘치는 증거입니다.
오늘 노동자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 축일을 지내면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며,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노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세상이 그분의 뜻대로 발전하고 완성되어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기적의 힘을 모으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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