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일 (토)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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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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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07:10 ㅣ No.189391

 

2026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4세기 이집트 사막의 한 원로 수도자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수도자는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임종 순간,

그의 머리맡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 울음소리에 깨셨는지 지그시 눈을

뜨십니다. 그리고 세 번 웃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임종을 앞둔 스승님께 그 이유를

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먼저 나는 그대들 모두 죽음을 두려워

하기에 웃었소. 두 번째는 그대들 가운데

아무도 준비된 사람이 없어서 웃었소.

마지막으로 내가 세상의 노고를 모두

벗어던지고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것이

기에 기뻐 웃었소.”이 말을 마치고 원로

수도자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일화가

크게 다가옵니다. 우선 우리 역시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유쾌할 수 있을까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은 하늘 나라

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지금을 잘 준비하는

사람의 몫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

다는 생각에, 또 하느님께 대한 부족한

믿음으로 인해서 지금을 잘 살지 못합니다.

후회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하느님 나라를 가고자 하지만, 지금 당장은

가지 않으려는 우리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준비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요한 14,8)라고 청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모세나 엘리야의 경험처럼,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광이 눈앞에 나타나는

장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늘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압도적인 증거를 통해서만

믿겠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이나

번개 가운데 숨어 계신 분이 아니라,

목수 출신의 초라한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완벽하게 하느님 아버지를

드러내셨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철저하게 지금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기적이나 확고한 증거만을

요구하게 되면, 주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세상 안에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이용하려고만 할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죽음의 순간에서 유쾌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준비가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의 참된 의미는 자신이 나무 그늘에서

쉬겠다는 마음 없이 나무를 심는 것이다.

(넬슨 핸더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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