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4일 (월)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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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5/3) : 부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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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5-02 ㅣ No.189405

 

* 제1독서 : 사도 6, 1-7

* 제2독서 : 2베드 2, 4-9

* 복음 : 요한 14, 1-12

*<오늘의 강론>

‘인생은 나그네 길’(Homo viator)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길을 걷는 이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있는가?’ 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엉뚱한 곳에 가 닿는다면, 애초에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야할 곳으로 간다할지라도 갈 수 있는 길을 모른다면, 가야할 곳에 도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와 함께 가느냐?’는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시고, 무엇이 ‘참된 삶’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에서 일곱 부제를 뽑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가는 ‘믿음의 길’을 제시해줍니다.

<제2독서>에서는 ‘믿고 주님께 나아가는 이들’, 곧 그분의 소유가 되는 백성에 대해 말해줍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 하신 <고별사>중 일부입니다. 곧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유언 말씀’입니다. ‘유언’이란 남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가장 귀중한 가르침이라는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그러니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과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겠다.”(요한 14,2-3)

이는 당신이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이 어떠한 지’, 그리고 ‘그곳을 왜 가시는지’를 밝히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먼저 ‘아버지 집’ 가시어 ‘우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이 세상이 ‘나그네살이’이지만, 궁극에서 ‘이별이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벅찬 ‘유언 말씀’입니다.

여기서, “거처”(μονη)는 ‘마련해(정해진) 둔’, ‘예비 된’이란 의미로, <요한묵시록>에서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21,2)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분과 함께 거처할 자리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말씀하신 ‘시노달리따스의 실행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길 위에 있는 교회’(ecclesia viatrix)입니다. 그리고 ‘함께 걷는 길’의 ‘여정’을 갑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와 필립보에게 알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았으면서도 보지 못함은 ‘믿지 않은’ 까닭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11)

그렇습니다. 참으로 믿음이 ‘길’입니다. ‘길’은 진리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믿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믿음’ ‘참된 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사실, 당신께서 “길”이라는 이 말씀은 황당하고 당혹스런 발언이요, 혁명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의 표상은 본디 이집트 탈출의 상징이요, 해방의 길을 표상했고, 점차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영원한 보상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율법”에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길”의 의미가 ‘율법’에서 ‘예수님의 인격’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이 “진리”(áληθεια)라 함은 원어의 뜻이 ‘감추어진 보물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듯이, 당신이 성부를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생명”이라 함은 당신께서는 단순히 구원에 인도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구원의 원천인 살아있는 ‘생명’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인격적인 ‘길’이요 ‘진리’‘생명’이심을 증언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리를 알고자 하면서도, 막상 그 진리를 따르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그 진리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는 데는 ‘믿음’이 따릅니다. 그렇게 믿는 바를 따라 몸소 살 때라야 ‘자유’는 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알게 될 때가 아니라, 그 ‘진리를 믿음으로 따를 때’ 자유롭게 됩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하는 일 안에서,

당신의 진리가 이루어지도록 그 일을 믿음으로 실행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생명, 당신의 자유를 얻어 누리게 하소서.

저의 길이신 주님! 당신께서 길이 되어 제 발 아래에 밟혀가며 저를 이끄셨듯이,

저 역시 형제들 발아래 기꺼이 밟히는 길이 되게 하소서!

저의 생명이신 주님! 당신께서는 제 이빨에 씹혀 부서져 제 속에서 살이 되셨듯이,

저 역시 형제들에게 씹혀 부서지는 양식이 되게 하소서!

저의 진리이신 주님! 당신께서는 제 주장에 밀려 옳고도 져주셨듯이,

저 역시 형제들에게 밀려 저를 태워 진리의 빚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야?”(요한 14,9)

주님!

당신은 저를 용서하셨지만, 저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저를 희망했지만, 저는 절망했습니다.

결코 거두지 않으시는 당신의 믿음을 믿게 하소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게 하소서.

결코 놓지 않으시는 당신의 희망을 희망하게 하소서.

함께 있다는 것과 안다는 것과 본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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