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4일 (월)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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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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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29 ㅣ No.189429

김건태 신부님_내 계명

 

오늘 예수님은 “내 계명”이라는 표현으로 말씀을 여십니다. ‘계명’이란, 사전적으로, 종교적 용어로서 해당 종교 소속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을 의미하는 탓에, 다소 강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구약성경의 ‘토라’가 본디 하느님의 말씀 또는 가르침을 뜻하듯, ‘계명’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 또는 가르침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사랑 없는 가르침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 가르침 속에는 이미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임을 믿어 고백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과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희생을 통하여 율법의 완성이 사랑에 있음을 직시하면서도, 실은 구약시대 하느님의 토라, 곧 가르침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결과물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잊고 살던 율법 또는 계명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특별히 당신의 가르침과 희생을 통하여, 되새겨주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명 자체가 사랑의 결과이니,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받아 지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 약속을 건네십니다. 첫째 약속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입니다. 논리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약속입니다. 하느님이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다시 말해서 세상과 인류에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의 계명을 받아 지키는 사람은 곧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약속은,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입니다.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겠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당신의 실존을 있는 그대로 계시하시겠다는 약속을 듣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당신의 실존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신다고 하더라도, 그 실존에 완전하게 다가서기 위한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실”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한편,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겠다는 약속 안에는 무엇보다도 당신 부활을 증언하고 부활 증인으로 살아갈 자격이 부여되어 있음을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실존, 곧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활 신앙이 언제나 기준이 되고 중심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사랑의 계명을 준수하여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시며, 당신의 모든 말씀과 행적, 그 가운데서도 신앙의 핵심 사건인 부활 사건을 이해하고 길이 기억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부활시기를 살며 부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신앙은 전적으로 주님 사랑의 계명 준수, 곧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으로만 가능한 신앙입니다. 가족, 이웃,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서서 부활신앙을 환희 드러내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사랑과 계명 준수, 그리고 보호자 성령의 선물을 하나로 연결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21절)라고 말씀하신다. 즉, 주님을 사랑하는 표지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다. 사랑이 계명의 실천으로 드러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사랑이 곧 나의 무게다.”(Confessiones, XIII,9,10 의역)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끌려간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계명을 지키는 방향으로, 곧 하느님께로 끌려가게 된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23절). 성 치릴로는 이 구절을 주해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In Joannis Evangelium 의역)라고 설명한다. 곧, 성령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는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친교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26절). 성 바실리오는 성령의 행적을 이렇게 묘사한다. “성령께서는 가르치시고, 비추시며, 주님의 말씀을 제자들의 기억 속에 새겨주신다.”(De Spiritu Sancto 의역) 즉, 아들은 말씀하시고, 성령은 그 말씀을 깨닫게 하며, 아버지는 그 말씀을 주신 분이시다. 삼위의 협력 속에서 우리는 진리로 인도된다. 교리서도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살아 있는 기억 안에 보존하신다.”(94항 의역, 요한 16,13 참조) 성령의 가르침 안에서 교회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지니고, 그 말씀을 살아 있는 전통 속에서 보존하고 증거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안에 사시며,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신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에 참여하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삼위일체의 사랑에 참여하는 삶이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께 마음을 열고, 말씀을 실천하며 사랑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다. 이를 잘 묵상하며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요한14,26ㄱ) 

 

'하느님 사랑의 표지인 성령!' 

 

오늘 복음(요한14,21-26)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14,21)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14,26)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위격으로는 실제적으로 구분되지만, 오직 하나의 본성이요 실체이시다. 곧 하느님은 세 분이 아니라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다.'라는 교리입니다. 

 

세 위격 중에서 '성령 하느님'에 대해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 ...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 

 

성령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의 선물이며, 예수님의 새로운 현존 방법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신앙과 삶을 이끄시는 분이시고, 믿는 이들이 모여 있는 교회 공동체를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힘입니다.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의 말씀'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 성령 체험을 한 사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기록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사도로 대변신해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길을 그대로 걸어간 행적들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행전은 우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계속해서 씌여져야 할 말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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