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8일 (금)
(백)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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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 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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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5-07 ㅣ No.189483

조욱현 신부님_너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들려주신 의미 깊은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9절)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곧 삼위일체적 사랑 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이시는 신비로운 초대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계명을 지킬 때 그분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계명은 단순한 규칙이나 외적 행위가 아니라, 사랑 자체의 표현이다. 사랑 없는 계명 준수는 공허하며,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1코린 13,1-3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 VII 의역)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사랑이며, 사랑할 때만 우리의 행위는 하느님 안에서 의미가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1절) 주님은 우리를 단순히 의무 속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충만한 삶으로 초대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님의 기쁨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기쁨은 성령의 기쁨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실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이 있다.”(In Ioannem, Hom. 77 의역)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사랑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쾌락이나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내적 기쁨을 누리게 된다. 교리서도 이 말씀을 깊이 해석한다. “사랑은 모든 덕의 완성이며, 사랑은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자비를 낳는다.”(1829항 의역) 또한 “하느님을 찾는 갈망은 참된 기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30항 의역)라고 말한다. 즉,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랑의 삶은 단순히 의무를 수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은총의 길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늘 자기 욕심, 교만, 나태와 싸워야 한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권고한다. “하느님 사랑은 게으르지 않다. 참으로 사랑하는 이는 수고하고, 싸우며, 끝까지 인내한다.”(Regulae fusius tractatae 의역) 사랑은 결코 감정적 만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 자기 부정의 길이다. 그러나 이 길 끝에 참된 자유와 기쁨이 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서 누리신 충만한 기쁨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시고자 오늘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며 계명을 지킬 때, 성령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넘치게 될 것이다. 오늘, 이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맛보고, 그 사랑 안에 머물도록 은총을 청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사랑하며 살고, 사랑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기쁨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사랑과 기쁨

오늘 예수님은 앞선 가르침들, 곧 사랑의 계명을 지켜 당신의 사랑 안에,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 것을 되풀이하시는 가운데, 사랑의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기쁨 임을 밝혀 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 말씀 또는 가르침의 목적이 우리에게 기쁨을, 참된 기쁨을 선사해 줌에 있음을 하나의 계시로 일러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벗이라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 계시가 행복이나 기쁨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직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에 속하지 않는 삶, 땅에 발을 내딛고 있으면서도 늘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어야 함에도, 발붙여 살고 있는 세속의 기운이 한층 드세 보이고, 따라서 ‘아닌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 영향력을 떨쳐버리기가 만만치 않아서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이나 기쁨이 많이 가지고 있거나 많이 알고 있거나 등등으로 좌우되거나 평가되는 일이 허다한 것이 사실입니다.

 

충만한 기쁨 하면, 외국에서 일차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보좌신부로 일했던 (지금의 하남시에 위치한) 신장본당과 그곳에서 만난 형제 한 분이 떠오릅니다. 당시 신장본당은 천여 명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작은 시골 본당이었으나,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남달랐던 공동체였습니다. 본당 신자들 가운데, 장애로 몸은 불편하시고, 일자리라고 해봐야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직장에서 월급으로 겨우 4만 원, 그러다 보니 가정을 꾸릴 엄두도 못 내셨던 형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시며 활동 또한 적극적이었으며, 매달 봉급일이 되면 십일조를 고집하여 교무금으로 4천원을 흰 봉투에 정성껏 넣어 봉헌하셨습니다. 오죽했으면 본당 신부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조언, 아니 부탁까지 하셨겠습니까! 이분은, 세속 사람들이 당신을 불행하고 가련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할지라도, 성당에 오면 모든 신자분이 형제로 받아주시고 살갑게 대해주시고 인정해 주시니, 내게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산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사랑의 계명을 지켜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는 인상적인 아름다운 공동체, 소개해드렸던 이 형제님은 물론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의식으로 충만한 기쁨을 나누고 누린 공동체였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가운데서도, 세속의 잣대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삶을 살면서도, 주님 사랑의 말씀과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묵상하며 실천에 옮기는 이 모든 노력이 바로 그분 사랑 안에 머물고, 그분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임을 고백하며 희망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서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깊이 깨닫고, 사랑 실천으로 참 기쁨과 행복의 길을 걸어 나갈 것을 다짐하는, 기억에 남을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15,9ㄴ)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

 

오늘 복음(요한15,9-11)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9-11)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입니다.

'계시(revelatio)'는 '드러나다'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이 드러났다는 것인가?

우리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방법), 그것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찾고 있는 참기쁨, 참평화, 참행복의 길이 이미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의 중요한 원천'은 '성경과 성전'입니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리고 '전해져 오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전' 안에 그길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이들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성경과 성전 안에 드러나 있는 계시의 핵심 내용이 '사랑'입니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육화와 땀과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사랑을 믿고 사랑을 드러내는 종교'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났듯이, 이제는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이 너와 세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 대전제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사랑을 내가 먼저 믿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그 사랑 안에 깊이 머무는 것입니다.

 

함께 노력해 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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