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6일 (화)
(백)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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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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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56 ㅣ No.189798

김건태 신부님_백 배의 보상

오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을 대표하여 베드로가 말씀을 아룁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주님을 따라나서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명시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아 세우실 때, 제자들의 반응은 늘 ‘버리다’는 용어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버려두고...” 등등. 버리지 못하면, 예수님을 따라나설 수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택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연히 모든 것을 버린 사람에게 주어질 보상에 관한 약속으로 기대됩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 “박해”를 포함한 고통이 동반할 것임은 신앙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집이나 토지를 백 배로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세속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부모와 형제와 자녀를 백 배로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문자 그대로 부모와 형제와 자녀의 수가 백 배로 증가한다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달리 묵상해 볼 대목입니다. ‘박해’와 ‘백 배’를 하나는 부정적 보상, 다른 하나는 긍정적 보상으로 떼어 묵상해 볼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긍정적 현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버릴 때 비로소 백 배나 받을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미 곧 탄생할 교회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으로 사람들, 특히 제자들을 온갖 사랑으로 양성하시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부의 뜻을 완성하신 다음, 당신의 구원사업을 사도들에게 맡기시고 하늘에 오르시며,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을 기초로 지상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제자들이 이끌어갈 지상 교회는, 우선 교회를 이단으로 단죄한 유다교로부터, 이어서 그 험악한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갖은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오히려 성장을 자랑했으며, 구성원 또한 날로 증대되어 갔습니다. 구성원의 증대는 구성원 상호간의 영적 관계, 곧 영적인 부모와 형제와 자녀의 관계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이 관계는 친부모나 친형제 또는 친자녀와의 관계보다 더 깊고 소중한 관계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버리지 않았다면,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크고 작은 박해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은혜로운 관계였습입니다. 나아가, 영적인 관계에서는 다 우리 집이고, 다 우리 토지이니, 이 역시 백 배가 아니라 수천수만 배가 될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도 버리기 어려운 터에,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과 복음 때문”이라면, 우리는 무엇이든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최소한 그러한 마음가짐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버려야만 비로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 한평생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보장해 주신 영적인 부모와 형제와 자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그분들과 함께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나가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28절)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이나 직업을 포기하는 차원이 아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성 베네딕토 규칙에서도 수도자는 “아무것도 그리스도보다 앞세우지 말라.”(Regula Benedicti)라고 가르친다. 결국,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나의 뜻, 나의 소유, 나의 안전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우선으로 두는 삶이다. 

 

예수님은 어제 복음에서 부자 청년이 재물 때문에 그분을 따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그와 대조적으로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모습을 보여 주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이란 소유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그 재물은 인간을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시킨다.” 즉, 문제는 ‘가지고 있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면 축복이 되고, 집착하면 올무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29-30절)라고 약속하신다. 이 백 배의 보상은 단순히 물질적 배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새로운 가족과 관계,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실제로 사도들은 모든 것을 버렸지만, 교회 안에서 수많은 형제자매를 얻었고, 복음을 전하며 참된 기쁨을 누렸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31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 역전, 곧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상은 가진 자, 힘 있는 자를 높이지만, 주님께서는 겸손하고 모든 것을 버린 자를 높이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의 눈에 보잘것없는 자들이 하느님의 눈에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 안에서만 부유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여전히 내가 집착하는 ‘작은 부자 청년의 마음’은 없는가? 재물, 명예, 내 고집과 관념까지도 하느님보다 앞세우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버린다는 것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더 큰 선물로 채우시기 위한 여정이다. 주님께서 내 삶에 주신 은총과 재능, 시간, 물질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곧 백 배의 축복을 체험하는 길이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 나라의 참된 부자가 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자. 

 

이병우 신부님_"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31) 

 

'방심은 금물!' 

 

오늘 복음(마르10,28-31)은 '따름과 보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대표해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10,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29-31)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이들이 받게 되는 이제와 영원한 생명(행복.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와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과 행복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산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결정적 은총(선물)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따름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 보상을 받으려면, 항상 지금 여기에서 믿고 희망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깨어 있는 이들이 첫째가 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꼴찌가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깨어 있는, 날마다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1베드1,13) 

 

'방심은 금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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