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6일 (토)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45 ㅣ No.189977

조욱현 신부님_연중 제9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12,38-44: 과부의 헌금

 

오늘 복음은 두 장면을 보여 준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위선적 율법 학자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과 잔치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원했다. 겉으로는 경건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다.”(40절)라고 말씀하신다. 둘째, 그와 대조적으로 성전의 헌금 궤 앞에서 가난한 과부의 작은 봉헌을 칭찬하신다. 많은 이들이 큰돈을 넣었지만, 과부는 생활비 전부인 렙톤 두 닢을 봉헌했다. 예수님은 그 봉헌이 가장 크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넣은 돈의 양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린 마음을 보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치는 것의 크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깊이를 보신다.” 참된 봉헌은 의무감이나 체면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전부의 내어줌이다.

 

이 과부의 봉헌은 예수님의 자기 봉헌을 예표 한다. 과부는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오리게네스는 “이 과부 안에서 우리는 가난하였지만,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본다.”라고 해석했다. 그녀의 작은 동전 두 닢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두 손과 두 발의 상처와도 같이, 사랑의 절정에서 드려진 봉헌의 표지다.

 

이 과부의 태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신앙은 보여 주기 위한 겉꾸밈이 아니다. 겉으로 경건한 모습에 머물고 이웃을 착취하는 율법 학자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경고가 된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우리가 드리는 기도·시간·정성·재물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이 없는 봉헌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드려지는 작은 봉헌은 하늘을 움직인다.”라고 했다.

 

우리가 바치는 것은 단순히 헌금이나 물질만이 아니다. 내 시간, 내 재능, 내 노고, 내 고통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얼마나 내어드렸는가?’이다.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내어놓았듯이, 우리도 자기 삶 전체를 하느님께 드릴 때, 그분의 은총은 충만히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봉헌의 모범이다. 그녀는 가진 것이 적었지만, 하느님께 전부를 내어놓았다. 이는 예수님이 당신을 완전히 봉헌하신 모습과 같다. 겉치레 신앙을 버리고, 사랑 안에서 내어놓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전 존재를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김건태 신부님_가진것 모두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그러운 사람들로, 부자들은 늘 인색한 사람들로 평가한다는 주장은 정말 경계해야 할 역설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유하면서도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인색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오만과 불의에 젖어 있던 율법 학자들을 앞서 강력하게 비난하신 다음, 오늘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의 너그러운 행위를 예찬하고 계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율법 학자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웅변적으로 질타하시며,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먼저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는 것을 보시며, 이어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을 넣는 것도 보십니다. ‘렙톤’은 그리스 동전으로서, 하루 품삯의 1/150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 정말 얼마 안 되는 액수였습니다. 부자들의 ‘풍족한 가운데서의 큰 돈’과 가난한 과부의 ‘궁핍한 가운데서의 작은 돈’이 대조를 이루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은” 부자들의 ‘큰 돈’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궁핍한 가운데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은” 과부의 ‘작은 돈’에 대해서는 높이 치하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러한 목격담을 통해서 진정한 헌금 또는 증여 정신을 가르치고자 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생각을 좀 더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적대 세력으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율법 학자들입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교 회당은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고 성경을 해설하는 회당이었기에, 율법 학자들이 사제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들은 백성들로부터 통상 ‘랍비’(선생님)라는 존칭으로 불렸습니다(마태 26,25.40.; 요한 1,38). 예수님도 그들의 식견을 인정하시고(마태 13,52), 그들과 자주 논쟁을 벌이십니다.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풍족함을 자랑했으나 실천에는 굼뜨거나 인색했던 율법 학자들, 율법 해석과 편찬에 관한 일을 맡고 있었기에 때로는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았던”(마태 23,4 참조) 율법 학자들, 예수님이 보시기에 하느님의 참된 부르심에 따르지 않고 부질없이 전통에 집착해 율법의 지엽적인 문제들에만 매달리고 그 본래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진 것을 다 바쳐, 다시 말해서 말하는 대로 먼저 실천에 옮기고, 아는 대로 서슴지 않고 실행하며, 믿는 대로 꾸밈없이 솔선수범해야 함에도,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자랑하고 설쳤던 율법 학자들의 겉꾸미는 모습은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들,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서, 하느님의 너그러움을 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힘쓰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9주간 토요일>(6.6)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12,43ㄷ) 

 

'온 마음과 정성을 담자!' 

 

오늘 복음(마르12,38-44)은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명예욕과 자기 과시와 탐욕에 물들어 있는 율법 학자들을 비판하십니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12,38-40) 

 

왠지 성직자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니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단죄를 받을까 겁도 납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자들을 더 엄중하게 단죄하신다고 하시니. 

 

그리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신자들의 봉헌 정신과 봉헌의 자세를 일깨워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12,43-44)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하게 당신께로 향해 있는 마음이기를 바라십니다. 

 

봉헌할 때마다 흥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얼마를 봉헌할까를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지?

봉헌할 때마다 아까워 하는 마음은 아닌지?

한번 함께 우리 각자의 모습을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드리는 신적 행위입니다.

그러니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나의 정성된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율법 학자들의 모습을 닮지 않도록 경계하고, 나의 봉헌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담도록 합시다! 

 

(~ 욥기11,2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4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