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0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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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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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47 ㅣ No.190203

조욱현 신부님_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신다(24절). 재물은 인간을 종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마음의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재물이 마음을 지배할 때,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노예가 된다.”(De Civitate Dei, 10,13 요약)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을 두려워하거나 섬기지 말고, 그것을 올바르게 관리할 줄 아는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하늘의 새와 들꽃을 예로 들어,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30절)라고 말씀하신다. 자연은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보여 주는 거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자연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을 베푸시려는 신비로운 방법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마련하셨음을 믿는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Homiliae in Matthaeum, 62,1 요약)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가 먼저 하늘의 가치와 의로움을 추구할 때, 필요한 것을 더해 주신다.(33절)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33절) 인간의 궁극적 선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다. 일상의 필요와 세상의 재물은 부차적이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충분히 공급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영혼의 구원과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인간 활동의 최상 목표이며, 물질적 필요는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충족된다.”(Summa Theologiae, II-II, q.188, a.2 요약)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34절)라는 말씀은 불필요한 미래 걱정을 내려놓고, 현재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초대이다. 마음이 하느님께 향할 때, 우리의 일상적 필요와 영적 필요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재물이나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고 세상의 재물은 종으로 삼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우리 마음과 행동을 조율하라는 신학적·영성적 가르침이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의 보물과 의를 우선하며, 하느님 안에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길이다. 우리가 매 순간, 재물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는 삶을 선택할 때, 모든 필요와 걱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손안에 맡겨지게 된다.

 

이병우 신부님_"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6,34ㄱ)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 복음(마태6,24-34)의 제목은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이고,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하시면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4)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새들이나, 들에 핀 나리꽃들을 눈여겨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지켜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하찮은 피조물들까지도 보살피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6,25)고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셨는지요?

우리가 오늘 복음을 어떻게 알아들여야 하는가?

하느님만 믿고 단순하게 아무 걱정하지도 하지 않으면서, 땀도 흘리지 않으면서 놀면서 먹고 마시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하라는 말씀인가?

 

오늘 복음이 이런 경종을 울리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런 역설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으로.

'선물로 주어진 현재(present)의 시간에 충실하라'는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소, 곧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으로.

 

'잠'은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충전의 시간입니다.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니, 잠시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매일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오늘에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우리농은 흙사랑, 땅사랑, 물사랑, 생명운동입니다."

 

(~ 시편5,13)

 

우리농 이병우 루카 신부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과 재물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께 온전히 열려 있는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역설하십니다. 이들은 현실의 삶 속에서 무엇이 가장 값진 것인지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또는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값진 것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며, 그 외 다른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임을 잘 깨닫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 또는 보통 사람들에게 세속의 근심 걱정은 온전히 사라질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예전에 비추어 분명 삶의 질은 좋아졌지만, 이러한 근심 걱정의 무게는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커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이 근심 걱정은 주로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물질을 쌓아놓으면 우리가 꿈꾸고 있는 행복과 안전이 보장되리라 믿지만, 문제는 우리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보면 그 정도면 됐다 싶은데, 상대적으로는 언제나 배고픕니다. 보다 풍족한 재물 추구를 위해 애써 보지만, 그 끝에는 심적인 허무감만 도사리고 있을 뿐이며, 재물 추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집착이나 알력은 또 다른 근심 걱정을 낳곤 합니다.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끊임없는 악순환, 많은 사람은 때로 의약의 힘을 빌리거나 심리 치료를 통해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효과는 신통하지 못합니다. 순간만 채워주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랑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과의 관계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되찾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되찾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따뜻한 시선을 다시금 느끼고 그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은, 특히 재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곧 상대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이 깨달음의 순간, 우리에게 이 세상과 재물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더 채워야 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들어내 나누고 베풀어야 할 것, 사랑 실천을 위해 꼭 필요한 수단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이런 의식을 갖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는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선으로 창조하셨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선한 것이며,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늘 선한 것으로 남고 평가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재물 역시 당연히 선한 것이나,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발붙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재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잘 다스리고 활용함으로써, 우리 모두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고 그분의 의로움을 추구하는 신앙인임을 더욱 드러내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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