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토)
(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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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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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6-26 ㅣ No.190296

이병우 신부님_"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른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8,2ㄴ) 

 

'나병 환자의 믿음!' 

 

오늘 복음(마태8,1-4)은 '나병 환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8,2ㄴ)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8,3)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낫습니다. 

 

'믿음'은 '신뢰이자 약속'입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굳은 신뢰 아래에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지금 여기에서 실행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과의 약속'입니다. 

 

오늘 독서(2열왕25,1-12)는 이스라엘이 완전 멸망해서 치드키야 임금과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느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결과입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 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신명30,15.17,18ㄱ)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30,19ㄴ-20ㄱㄴ) 

 

오늘 치유를 받은 나병 환자, 온 몸과 마음이 문드러진 나병 환자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예수님께 매달리는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그 '신뢰와 믿음'이 그를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신뢰와 믿음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조욱현 신부님_한센병 환자의 치유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 찾아와 간청하는 한 한센병 환자가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이 짧은 기도 속에는 놀라운 믿음과 겸손이 담겨 있다. 그는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며, 치유의 주권이 그분께 있음을 고백한다. 이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가져야 할 참된 기도의 자세를 보여 준다. 기도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나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선물을 강제로 주시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겸손히 청할 때,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다.”(Sermo 169 요약) 이 한센병 환자의 청원은 바로 이러한 겸손한 믿음의 모범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3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사회에서 부정한 자로 낙인찍혀 격리된 한센병 환자에게 예수님이 손을 내미셨다는 것이다. 당시 율법은 그와의 접촉을 금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려움 없이 다가가셨다. 이는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멀어진 인간에게 친히 다가오신 사건, 곧 육화의 신비를 드러낸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바로 하느님이 인간과의 거리를 허무시고, 우리가 참된 생명에 이르도록 하시는 사랑의 계시이다. 

 

예수님은 치유된 그에게 말씀하신다.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4절) 치유는 단순히 개인적 회복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안으로 다시 받아들여지는 은총의 회복이다. 교회 역시 성사 안에서 죄인을 치유하고 공동체 안으로 다시 받아들인다. 고해성사가 바로 그러한 회복의 자리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면서 죄인들을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안에 다시 받아들이셨다. 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해 이 사명을 계속한다.”(1443-1444항 참조) 

 

오늘 복음의 한센병 환자는 단순히 육체적 병자의 모습만이 아니다. 그는 바로 죄로 인해 하느님과 이웃에게서 멀어진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처럼 겸손히 고백할 때, 주님은 언제나 손을 내밀어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죄가 크다고 절망하지 말라. 회개하는 순간, 죄보다 더 큰 하느님의 자비가 네 앞에 있다.”(Hom. in Matth. 25,2 요약)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속에 숨어 있는 대신, 오늘 한센병 환자의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그때 우리도 죄의 상처에서 벗어나고, 하느님의 자녀다운 기쁨을 되찾게 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깨끗하게 되어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한센병으로 불리기 전까지 나병은 불치의 병, 저주의 병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더욱이 전염되는 병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한센병 환우의 자녀들이 미감아(未感兒), 곧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로 불렸었다는, 있을 수 없었던 현실을 다들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접촉은 엄금되었으며, 나병환자로 판명되는 순간부터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격리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레위 13,45-46 참조). 그러니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무너지게 만드는 무서운 병,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과 같은 병이었으며, 지금은 이해 정도가 많이 넓어졌다고 하나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가 치유를 간청하기 위해, 율법을 어기고,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 장면이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제자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모두 그 자리를 떠났을 것입니다. 그는 엎드려 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초월하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청원자의 간절한 마음을 읽으시고 그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시며 치유의 은혜를 내리십니다.

나병환자에게 몸이 깨끗하게 되는 육체적 치유 문제는 이제 별 의미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이가 자신을 멀리하는 데도, 이분은 나를 만나 주시고 내 몸에다 손까지 대시니, 이토록 ‘함께하시며’ 내 마음의 깊은 병을 치유해 주시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육체적인 병도 병이지만 나병환자들이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따돌림’이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함께함’입니다.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병으로 고통받거나 소외되고 있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함께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드러내고, 그들 또한 힘을 내서 함께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희생하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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