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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기도의 응답을 받은 이들에겐 비밀이 하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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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도 한 날을 잘 지내셨는지요.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기도의 가장 완벽한 모범을 만납니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간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참조) 짧은 기도지만,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모든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저는 그 비밀을 한 문장으로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느님은 기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봅시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는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도 누군가 무섭게 협박한다고 해서, 혹은 하도 졸라 댄다고 해서 무언가를 내어 주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그렇게 강요당하면 주고 싶던 마음마저 싹 달아납니다. 우리가 기꺼이 무언가를 내어 주는 때는, 그렇게 주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베풀 때 우리가 행복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주는 것 자체가 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기도의 첫 번째 원칙이 나옵니다. 무언가를 청하려거든, 그것을 주려는 사람의 기분부터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 자기 행복을 위해 주는 법이니, 주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얻어내는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분의 기분은 헤아리지도 않고 무작정 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어리석음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부르는지, 윌리엄 제이콥스의 단편 「원숭이 손」이 섬뜩하게 보여 줍니다. 한 부부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원숭이 앞발 부적을 얻습니다. 그들은 그 앞발에게 마음이 있는지, 그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무엇을 원하는지 따위는 묻지 않습니다. 그저 죽은 물건을 문지르듯, 당장 빚 갚을 이백 파운드를 달라고 빌 뿐입니다. 소원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돈은 하나뿐인 아들이 공장 기계에 끼어 참혹하게 죽은 대가로 나온 사망 보상금이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비탄에 빠진 어머니가 두 번째 소원으로 "아들을 다시 살려 달라" 빌자, 묻혔던 아들이 짓이겨진 몸 그대로 문을 두드리며 돌아옵니다. 공포에 질린 아버지는 마지막 소원으로 황급히 그를 도로 무덤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경고가 있습니다. 이 부부의 비극은 소원을 빌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는 쪽의 마음과 기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 있는 힘을 죽은 부적처럼 대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들어주는 분이 누구이신가, 그분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묻지 않고, 제 욕망만 기계에 입력하듯 밀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꼭 이렇지 않습니까. 살아 계신 하느님, 마음과 기쁨을 지니신 그 아버지를, 동전을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문지르면 소원이 나오는 원숭이 앞발처럼 대하지는 않습니까. 주는 분의 기분은 헤아리지 않고 내 욕망만 들이미는 청은, 그 자체가 이미 저주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는 분의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가장 기분 좋을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영광스러워질 때입니다. 자기가 높여지고, 그 가치가 알아봐질 때 사람은 가장 흐뭇해집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이든 기꺼이 내어 주고 싶어지는 순간도, 자식이 그 부모를 진심으로 알아보고 자랑스러워할 때입니다. 하느님도 그러하십니다. 당신께서 영광스럽게 높여질 때,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참되게 고백받을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얻어내는 길은 분명합니다. 청하기 전에 먼저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려 기분 좋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가 바로 그 일을 해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제 욕망부터 들이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하고 먼저 고백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낸 위대한 신앙고백이며, 그분을 영광스럽게 높여 드린 찬미였습니다. "당신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는 제 병의 절박함보다 그분의 능력과 자유를 앞세웠습니다. 자기가 받을 것에 골몰하기 전에,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영광스럽게 고백한 것입니다. 어느 분이 이런 고백 앞에서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체없이 손을 내미시며 응답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3 참조) 환자가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면" 하고 그분의 뜻을 높이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하고 그 뜻을 기꺼이 펼치신 것입니다. 이 비밀을 뼛속까지 깨달은 인물이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남북전쟁 때 북군이 극도로 몰리던 어느 날, 한 참모가 초조하게 말했습니다. "각하, 하느님께서 우리 북군 편에 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러자 링컨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기를 기도하지 않소. 하느님은 언제나 옳은 편에 계시기 때문이오. 내가 날마다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는 오직 하나, 우리가 하느님의 편에 서게 해 달라는 것이오." 우리는 늘 하느님을 내 편으로 끌어와 내 뜻에 굴복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내가 하느님 편으로 건너가, 그분을 영광스럽게 높여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찾으려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밀을 통째로 응축하여 손수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 순서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주님의 기도는 결코 내 소원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처음 세 청원을 온전히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높여 드리는 데 바칩니다. 곧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먼저 찬미하여 그분을 기분 좋으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 양식과 용서와 보호를 청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곧 주님의 기도는, 나병 환자가 그러했듯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면"을 먼저 길게 바쳐 그분을 영광스럽게 높여 드리고, 그 뒤에 내 청을 살며시 얹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 습관을 따끔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입으로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면서, 머릿속은 온통 "제발 그 시험에 합격하게, 그 병이 낫게 해 주십시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높이는 그 앞부분은 빨리 해치울 인사치레로 흘려보내고, 마음의 무게는 전부 내 소원에 실어 두지는 않습니까. 성체조배를 하러 들어가서도, 그분을 찬미하고 그 마음에 귀 기울이기보다 내 청원 목록만 일방적으로 읽어 내려가다 나오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바치는 기도는, 형식은 주님의 기도이되 속내는 원숭이 앞발을 문지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영광 받으셔야 할 살아 계신 아버지를, 기분도 헤아리지 않고 죽은 부적처럼 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그 앞부분을 결코 대충 흘리지 말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한마디 한마디에 온 마음을 실으십시오. 그것이 곧 나병 환자의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이며, 그분을 기분 좋으시게 해 드리는 길입니다. 그렇게 그분을 영광스럽게 높여 기쁘시게 해 드릴 때, 예수님께서는 지체 없이 손을 내미시어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응답하시고, 상상하지 못한 하늘의 축복까지 기쁘게 얹어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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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03 |
매일미사/2026년 6월 27일 토요일[(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
01:11 | 김중애 |
| 190302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
2026-06-26 | 박양석 |
| 190301 |
06.26.금 / 한상우 신부님 |
2026-06-26 | 강칠등 |
| 190300 |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
2026-06-26 | 박영희 |
| 190299 |
전삼용 신부님_기도의 응답을 받은 이들에겐 비밀이 하나 있다 |
2026-06-26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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