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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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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상가 장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밭을 가는 데는 소용이 없다. 큰 기둥은 집을 짓는 데는 필요하지만 작은 틈을 메우는 데는 소용이 없다. 부엉이는 밤에는 작은 벌레를 잘 보지만 낮에는 큰 산도 보지 못한다.” 장자는 능력과 쓰임과 본성이 다르므로 서로를 함부로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꽃밭의 꽃들이 서로 다른 색과 향기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듯이, 우리도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자리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공동체를 이끌고, 누군가는 뒤에서 묵묵히 봉사합니다. 누군가는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누군가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공동체를 섬깁니다.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의 덮개가 떨어졌습니다. 매일 산책하면서 사용하던 것이라 새로 사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붙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7불짜리 순간접착제를 사서 조심스럽게 붙였습니다. 붙인 자국은 남았지만,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신앙이 바로 이런 접착제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주 갈라집니다. 오해 때문에 멀어지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에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정치와 이념 때문에 갈라지고, 세대 차이 때문에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틈을 다시 이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오해로 갈라진 사람은 이해의 접착제로 붙이면 됩니다. 미움으로 멀어진 사람은 사랑의 접착제로 붙이면 됩니다. 교만 때문에 헤어진 사람은 겸손의 접착제로 붙이면 됩니다. 그리고 어디에나 가장 잘 붙는 접착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 희망, 사랑’의 접착제입니다. 지난번 사제 모임에서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역사와 미국 한인 가톨릭교회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참 인상 깊었습니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처음부터 중심에 있었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동부에서는 영국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개신교가 중심이었던 미국 사회에서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 이민자, 독일 이민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교회를 지켜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단순히 미사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교회는 가족이 되었고, 쉼터가 되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사회복지 사업과 교육 사업을 통해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 안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톨릭 신자인 케네디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미국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주변부의 교회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중요한 공동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미국 한인 가톨릭교회의 역사 역시 감동적이었습니다. 1966년 샌프란시스코의 성 미카엘 성당에서 시작된 한인 공동체는 이제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메이플우드, 필라델피아, 워싱턴 DC의 공동체가 50주년을 넘겼고, 올해는 타코마 성당이 50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내년이면 우리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도 설립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 사제들이 중심이 되었고, 교우들은 낯선 땅에서 눈물과 땀으로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언어도 어려웠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 문화적으로도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신앙으로 서로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김치를 나누고, 국을 나누고, 눈물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제 모임을 통해 우리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공동체가 참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것은 교우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 덕분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교황 주일’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교황님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대한 사랑도 크고, 미국 출신인 레오 14세 교황님에 대한 기대와 사랑도 큽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교황님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사랑의 접착제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우리는 교황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권력과 성공보다 사랑과 평화와 연대를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접착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눔’입니다. 제1독서에서 가난한 부부는 예언자 엘리사를 위해 작은 방을 내어주고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그런 부부를 축복하였고,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작은 나눔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의 손길 하나, 식사 한 끼의 배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마음이 공동체를 이어주는 접착제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삶이 바로 ‘새로운 삶’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 우리 역시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갈라진 세상을 다시 이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붙이고, 상처를 용서로 붙이고, 절망을 희망으로 붙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황님이 전 세계 교회를 이어주는 사랑의 접착제이듯이, 우리도 가정과 본당과 세상을 이어주는 믿음의 접착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누군가를 이어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접착제가 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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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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