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토)
(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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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세상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마음이 이미 믿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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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40 ㅣ No.190315

 

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를 만납니다. 놀랍게도 그는 유다인이 아니라 로마의 이방인 백인대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병든 종을 치유해 주시려 집으로 가겠다고 하시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도대체 이 이방인 장교는 어떻게 예수님조차 감탄하게 만든 믿음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그의 대답 속에 위대한 영적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예수님을 비교하며, 세상의 군대 지휘 체계라는 법칙을 통해 하늘의 법칙을 유추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지휘 체계 안에서도 한마디 명령이면 부하들이 움직이는데, 하물며 생명을 다스리시는 저분은 굳이 오실 필요 없이 말씀 한마디로 치유하실 수 있다!' 백인대장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법칙이라면, 그것이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통용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법칙을 통해 하늘의 법칙에 다다르는 것, 이것이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가장 완벽한 길입니다. 어떤 법칙이나 시스템이 이 세상에 완벽하게 구축되어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누군가 창조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법칙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은, 이미 그 법칙을 만드신 창조주가 존재함을 뼛속 깊이 인정하는 참된 믿음의 시작입니다. 설계도가 있다면 만든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설계도 없이 건물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설계도는 그 자체가 법칙입니다. 어떤 법칙이 발견된다면 그건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뻔한 이치와 법칙을 무시하고서 참 신앙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계단을 밟지 않고 공중 부양을 해서 2층으로 올라가겠다는 교만일 뿐입니다. 이 세상의 법칙을 깊이 탐구하다가 마침내 창조주를 만나 완벽한 믿음에 도달한 아주 유명한 실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DNA 유전자 지도를 최초로 해독해 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본래 철저하고 지독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과학적 증거가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았죠. 그런데 그가 무려 31억 쌍에 달하는 인간 DNA의 염기서열을 하나하나 해독해 들어가면서 엄청난 충격에 빠집니다. 인간의 몸속에 있는 이 유전 정보가 너무나도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과 법칙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학자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정보 체계와 생명의 법칙이 우연히, 지 혼자서 뚝딱 만들어진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위대한 지성, 즉 창조주가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결국 그는 무신론의 고집을 꺾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고, 훗날 자신의 깨달음을 담은 책 『신의 언어』를 펴냈습니다. 세상의 법칙을 가장 치열하게 찾아내려 했던 사람이, 결국 그 법칙을 지으신 분의 섭리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나는 예외야. 세상의 법칙이 나에겐 적용되지 않아.'라는 은밀한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집니다. 세상의 법칙에서 자신은 예외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앙의 법칙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2018년 1월, 일본 시가현에서 9년이나 의대 재수를 하던 딸이 자신의 친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9년 동안 딸의 휴대전화를 뺏고 방에 CCTV를 달아 감시하며 심지어 샤워조차 함께했습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딸은 트위터에 남겼던 글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괴물을 처단했습니다. 포로 같았던 그때보다 구치소 생활이 훨씬 편합니다." 왜 거룩한 강론 시간에 이런 끔찍한 사례를 꺼낼까요? 한국의 고3 우등생 어머니 살해 사건, 영국의 명문대생 어머니 살해 사건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이와 똑같은 비극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요? 바로 '나는 달라! 내 자식은 예외야!'라는 교만한 생각 때문입니다. 자유를 주지 않으면 결국 엄마는 칼에 찔리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자유와 인격적인 존중을 줄 때 비로소 참된 사랑과 성장이 뒤따른다는 것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심어놓으신 변함없는 법칙입니다. 그 존중의 법칙을 짓밟고 부모가 자식의 자유를 억압하면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예외라는 착각이 이 명백한 법칙조차 보지 못하게 만들어 안 좋은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반대로 유다인들의 교육 방식처럼 자녀에게 인격적인 자유를 주고 율법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는 이들은, 결국 부모도 자녀도 모두 성공하고 유익을 얻는다는 법칙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 나아만을 보십시오. 나병에 걸린 그가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왔을 때, 엘리사는 요르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나아만은 대노합니다. '나는 대제국 아람의 2인자다! 내가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람인데, 치유의 기적도 무슨 스펙터클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주어져야지, 저 똥물에 몸을 담그라고?' 그때 그의 부하가 나서서 간언합니다. 이 부하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부하는 세상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사랑의 법칙 하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서 어떻게 생명과 사랑을 얻어냅니까? 엄마가 "아~ 해봐" 할 때, 아기가 그저 입을 작게 벌리거나 숟가락을 쥐는 시늉을 하는 아주 사소한 순명 하나만으로도 엄마는 자신의 모든 생명과 양식을 아기에게 다 내어줍니다. 부하는 이 세상의 애틋한 법칙을 하느님과의 관계에 똑같이 적용한 것입니다. '장군님, 아버지가 아기에게 요구하듯 아주 작은 것, 그저 강물에 몸을 씻으라는 쉬운 일을 하라 하시는데 그것도 못 하십니까? 아기처럼 순명하십시오.' 세상의 법칙을 믿음으로 승화시킨 부하의 조언 덕분에, 특별함을 고집하던 나아만은 마침내 고집을 꺾고 평범한 법칙에 순명하여 새살이 돋는 기적을 얻어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나는 다르다', '나는 특별하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답은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로를 심판하고 핑계 대는 것이었습니다. 남을 판단할 때, 우리는 은연중에 '나는 저 인간과 다르다'라며 자신을 재판관의 특별한 단상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그 후손들이 바로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남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예외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하느님 외에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나도 모르게 판단된다면, 그 판단하는 잘못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이 내 안에도 똑같이 들어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 안에 그 쓰레기가 있기 때문에 남의 쓰레기도 보이는 것입니다. 이웃의 단점을 거울삼아 나의 단점을 고치려 할 때, 비로소 사람은 다 똑같고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을 촘촘히 지배하는 하느님의 법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법칙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온전한 믿음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처럼, 세상의 이치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참되고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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