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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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 <제7장> 작은 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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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13:02 ㅣ No.2926

<제7장> 작은 이들의 삶

 

세상은 강함과 성공, 지식과 권세를 힘이라 여기며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전혀 다른 길, 곧 겸손과 단순, 신뢰와 순결 안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는 ‘작은 이’가 되라고 간곡히 초대하십니다.

 

“내 가련한 자녀들아, 너희가 혼자 자신의 힘만으로 빛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만큼 더 깊이 암흑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단순함과 겸손, 어린이의 신뢰로 돌아와야 오늘날 하느님을 뵐 수 있다.” (53,5-6)


작은 이는 세상 눈에는 미약해 보일지라도, 회개로 빚어진 열매이며 성모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자녀입니다.

이 장에서는 작은 이들의 의미와 특징, 그리고 그 열매를 살펴보며, 우리가 일상 안에서 어떻게 작은 이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7.1 작은 이들의 의미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작은 이들은 메시지 안에서 여러 호칭으로 불립니다. “영적 어린이들”(63,8; 258,11), “작은 양떼” (580, 4), “겸손한 이들”(109,1; 500,3), “가장 작은 아기들”(272,1; 418,2)입니다.

 

세상 눈에는 미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특별히 선택된 존재이며 성모님의 기쁨과 위로가 됩니다. 성모님은 “내가 작았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의 기쁨이 되었다”(109,1)고 고백하시며, 자녀들에게도 같은 길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작은 이들은 세상적 기준으로는 무가치해 보일지라도, 하느님 안에서는 구원의 표징이자 하늘나라의 상속자로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을 걷는 이들입니다.

 

 

7.2 작은 이들의 특징

 

작은 이들이라는 부르심은 일상 속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모님께서는 자녀들이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겸손히 순종하며, 숨어 봉헌하고, 순결과 가난 안에 머물도록 이끄십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을 함께 묵상해 봅니다.

 

 

7.2.1 어린이 같은 단순함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에게 “이기심도 죄도 모르는, 조그만 아기들의 천진한 마음 (…) 꽃송이처럼 오로지 지식과 진리와 슬기의 빛을 향해서만 열려 있는 정신 (…) 부드러운 진흙처럼 신뢰와 자아포기로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옹기장이의 뜻대로 빚어질 각오가 되어 있는 의지”(258,12-14)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이 곧 영적 어린이의 길이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7.2.2 겸손과 순종


성모님은 “작은 사람이 되어야 내 계획을 이룰 수 있다”(109,10)고 하십니다. 교만한 영혼은 쉽게 무너지지만 겸손한 영혼은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또 “겸손의 길로 나를 따라오너라” (500,2) 하시며, 작은 이들이 교회와 교황에게 순종 안에서 복음의 증거자가 되도록 이끄십니다.

 

겸손한 이들의 특징은 곧 신뢰와 자아포기입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은 너희가 자기를 믿는 어른처럼 느끼도록 함정을 판다. 너희가 자신의 자아, 자신의 생각, 자신의 활동을 안전의 터전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신뢰와 자아 포기가 겸손한 이들의 특성임을 알고 있으므로, 너희에 대한 나의 활동을 점차로 의심하게 하고 신뢰하지 않도록 유혹한다.” (128,17) 

 

성모님은 또한 “너 자신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무것도 아닌 자’로 간주해야 한다. (…)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너를 온전히 내게 바쳐 주면, 내 계획대로 나 자신이 움직이며 일할 수 있을 것이다” (48,7)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작은 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이고, 모든 순간 성모님께 신뢰와 자아포기 안에서 자신을 맡기는 영혼입니다. 이렇게 작은 이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성모님께서 자유로이 일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7.2.3 숨은 봉헌의 삶


작은 이들의 봉헌은 눈에 띄는 활동보다, 아기 예수님이 성모님의 품에 안겨 있듯이 숨겨지고 조용히 드려지는 삶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모님은 “나는 너희의 작음을 본다. (…) 너희는 나의 어머니다운 도움이 없으면 단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못할 정도로 작아 보인다”(303,8)고 말씀하시며, 드러나지 않는 그 작음이야말로 성모님의 모성적 돌봄 안에서 참된 봉헌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길은 무엇보다 침묵과 내적 일치의 길입니다. 성모님 자신도 “성부의 뜻에 대한 나의 이 ‘예!’는 오랜 침묵 속에서 준비되어 온 열매” (173,4)라고 하시며, 어린 시절부터 숨어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만을 찾고 간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작은 이의 봉헌 역시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침묵 속에서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예”라고 응답하는 내적 생활입니다.

 

이러한 숨은 응답은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교회 전체를 새롭게 하는 씨앗이 됩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응답하였다. (…) 젊은이들이 내게 응답하였다. (…) 가정들이 내게 응답하였다. (…) 본당이 내게 응답하였다.” (418,2-5)


이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응답들이 ‘기도와 봉헌의 다락방’으로 퍼져 나가 세상을 보호하는 힘이 됨을 보여 주십니다.

성모님은 약속하십니다.

 

“나는 가장 작은 이들로써 충실한 교회를 몸소 기르겠다.” (526,2-3) 

 

세상적으로는 보잘것없고 숨어 있는 봉헌이지만, 바로 그 안에서 교회의 새로움이 자라나고, 성모님의 성심의 동산에서 새로운 교회가 태어납니다.

 

 

7.2.4 순결과 가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태 19,14)라고 말씀하시며, 단순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영혼들을 하늘나라의 주인공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순결 안에 머물러, 거룩하고 흠 없는” (500,7) 생활을 권고하시며, 마음을 깨끗이 지키는 것이 작은 이의 가장 중요한 표지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나의 풍성함은 오직 작고 가난한 이들의 풍성함이니, 곧 겸손, 신뢰, 의탁, 희망이다”(109,6)라고 밝히시며, 세속이 약속하는 부요가 아니라 하느님만을 참된 보물로 삼으라고 초대하십니다.

 

특히 성모님은 작은 이의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집착”(69,5-6)임을 지적하시며, 오히려 부족함과 결핍은 우리를 작게 머물게 도와주는 은총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실제로 성탄의 밤, 예수님을 맞이한 것은 호화로운 방이 아니라 동굴의 가난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단지 소와 나귀의 온기만이 있었지만, 바로 그 가난이 아기 예수님을 모실 자리가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도 “재물, 집착, 생각, 감정의 완전한 가난”을 살아가라고 초대하시며, 그러한 가난이야말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참된 무(無)이고, 그 안에서만 하느님의 충만이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나아가 성모님은 오늘의 시대에 “나의 사제들은 무엇보다 순결해야 한다. 지극히 순결해야 한다!”(21,19)고 호소하시며, 순결이 세상을 정화하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향기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순결과 가난의 길은 단순히 덜 가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자신을 비워내는 영적 태도입니다. 그것은 작은 이들을 사탄의 교만에서 해방시키고, 성모님의 승리에 동참하게 하는 참된 자유의 길이며, 하늘나라 상속자로 살아가게 하는 은총의 길입니다.

 

 

7.3 작은 이들의 열매


성모님께서는 작은 이들을 통해 당신의 승리를 이미 시작하셨다고 약속하시며, 그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을 치유하시며, 마침내 사탄을 꺾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살펴본 작은 이들의 특징은 이제 삶 안에서 ‘열매’로 드러나며, 네 가지 결실로 나타납니다.

 

 

7.3.1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남


성모님은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참으로 '그런 어린이들'에게 드러날 것”(63,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신비는 단순과 겸손, 묵상과 가난, 순결을 회복한 마음 안에 드러납니다. 세상적 지혜와 교만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돌아간 영혼에게는 하느님의 계획이 빛처럼 밝혀집니다.

 

성모님께서는 교회가 가장 혼란스러울 때, 믿음을 뒤엎는 큰 사건들이 일어나기 직전에 당신 자신을 징표로 드러내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징표는 은밀하고 겸손하게 나타나기에 많은 이들이 알아채지 못하지만, 바로 이것이 성모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가난한 이들의 마음 안에서는 내적 하늘이 환히 열리고, 성모님께서 친히 당신의 모습을 새겨 주십니다. 그 마음은 곧 성모님의 나라가 되며, 교회 안에서는 성모님의 현존과 도움의 징표가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7.3.2 작은 이들의 힘으로 사탄이 꺾임


성모님은 “작은 사람들의 힘이 교만한 내 원수를 패배시키리라”(230,4)고 약속하십니다. 세상 눈에는 미약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충실함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역사하여 사탄의 권세가 실제로 무너집니다. 성모님은 “가장 작은 이들로써”(526,2-5) 성심의 승리를 이루시고, 마침내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당신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 확증하십니다. 이 승리는 세상의 힘이 아니라, 오직 작음과 겸손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모님은 선언하십니다.

 

“내 작은 자녀들의 힘으로 결국 내 가장 큰 승리를 성취할 터이다.” (578,1)


이 약속 안에서 우리는 이미 사탄의 패배와 성모님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7.3.3 무신론과 불순결을 치유하는 은총


성모님은 “나는 작은 이들의 힘으로 (…) 그릇된 이데올로기에 속아 넘어간 이 가련한 인류, 무엇보다도 무신론이라는 큰 오류의 유혹에 빠진 이 인류 (…) 죄, 교만, 폭력, 불순결로 병들고 상처 입은 이 인류를 치유할 작정이다”(578,3-5)고 말씀하십니다. 이 치유는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작은 이들의 ‘예’를 통해 인류를 아버지께 다시 데려가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티없으신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여 순결을 지키고, 가정과 본당이 다락방 기도와 봉헌으로 응답할 때, 그 작은 응답을 통해 교회와 세상이 보호받고 새로워집니다.

 

성모님은 작은 이들의 끊임없는 ‘예’를 통해, 죄와 교만, 폭력과 불순결로 병든 세상을 정화하시며, 무너진 인간성을 치유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순결의 증언과 봉헌의 응답은 세상의 상처를 싸매는 도구가 되어, 세상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이끕니다.

 

 

7.3.4 교회의 위로와 쇄신의 표징


성모님은 “작은 이들의 마음 안에서 나는 큰 위로를 느낀다” (504,2)고 말씀하시며, 세상의 배척과 교회 안의 불충실이 깊은 고통을 남길 때에도 작은 이들의 응답 안에서 향유와 같은 위로를 받으십니다.

 

“작은 이들의 마음 안에서 나는 가장 큰 기쁨을 발견한다.” (504,3)


오직 그들 안에서 성부께서 기꺼움을 누리시고, 성자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성령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거처를 발견하십니다. 성모님은 이들을 통해 티없으신 성심이 끊임없이 새로운 마니피캇을 부르게 하신다고 밝히십니다. 작은 이들의 마음 안에 이미 성모님의 승리가 성취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교회의 참된 쇄신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열매는 오늘 이 시대에도 성모님의 승리가 교회와 세상 안에서 현실이 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고통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반대의 표적 안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7.4 시대의 묵상 ― 반대 받는 표적과 십자가의 사랑


작은 이들의 길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길이며, 언제나 세상의 반대와 십자가를 동반합니다. 그 길은 고통스럽지만, 바로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성모님의 승리가 이루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시대의 자녀들에게, 작음의 길이 곧 반대의 표적이자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길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 반대 받는 표적


성모님은 “내 아들 예수님처럼 너희도 오늘날 반대 받는 표적이 되도록 불려졌으니”(91,14)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이들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몰이해와 비난, 심지어 박해를 받게 될 것임을 드러내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글자 그대로 복음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너희는 복음을 글자 그대로 실천해야(…) 계시하신 진리를 너희가 갈수록 더 힘차고 분명하게 거듭거듭 말해야(…)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증거가 점점 더 고통스러운 것이 되도록 정하셨다”(91,5-13)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너희 형제 사제들 가운데 너무나 많은 이들이 복음을 세속 정신에 맞추려 함으로써 그 진리를 배반하고 있다. (…) 이보다 더 위험한 착각은 없다.” (91,8) 


이는 복음이 세속적 가치와 섞일 위험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복음을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작은 이들이 왜 세상과 교회 안에서 반대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 줍니다. 바로 이 반대와 고통의 길이 결국 십자가의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이 길은 곧 예수님께서 걸으신 갈바리아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셨고, 그 십자가의 길은 아버지 사랑의 완성이며 인류 구원이 실현된 결정적 순간이 되었습니다.

 

✦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길은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길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조건과 이해관계에 흔들릴 수 있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십자가 안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자신을 봉헌하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작은 이들은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한 자신의 삶 속에서 증거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앨런 에임스의 영적 기록을 통해 이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갈망하지만 참사랑을 찾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십자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예수님의 사랑의 외침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찾고 있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기를 열망하지만, 사랑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오.’ 하는 말을 듣게 되기를 기다리며 살지만, 결코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이 눈먼 상태로 있다. 내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한다!’ 하고 얼마나 크게 부르짖고 계신지를 보지 못하고, 그것이 자기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 앨런 에임스,『예수님의 눈으로 3』, 1998년 1월 1일 성모님 메시지

 

십자가의 사랑은 결국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 안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뜻을 끝까지 따르실 수 있었던 것도,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었던 것도 모두 변치 않는 신뢰에서 비롯된 사랑이었습니다. 작은 이들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이 신뢰 안에서 살아가며, 그 삶 전체가 곧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길이 됩니다.

 

 

7장을 마치며


작은 이들은 성모님의 기쁨이며 교회의 희망입니다. 그들의 단순한 ‘예’와 충실한 삶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드러나고, 교회는 새로워지며, 세상은 치유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언제나 쉬운 길이 아니며, 오히려 몰이해와 배척, 박해를 동반하는 반대 받는 표적의 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내 발꿈치로 사탄의 머리를 짓밟겠다”고 선언하시며, 바로 이 작은 이들을 발꿈치로 택하셨습니다. 발꿈치는 가장 약한 부분이지만, 겸손 안에서 원수의 교만을 꺾는 결정적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작은 이들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개인적 성덕을 넘어, 교회와 세상을 위한 시대적 응답이며 성모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작은 이들은 곧 하늘나라의 상속자이며,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 이 마지막 시대에 준비되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작은 이들의 충실함과는 정반대로 교회 안에 점점 더 퍼져 가는 배교의 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것이 교회 전체를 뒤흔드는 시대의 상처임을 경고하십니다.

 

<이 장에서 참조한 메시지> 21, 48, 53, 63, 64, 69, 74, 88, 91, 100, 109, 128, 173, 214, 230, 258, 272, 303, 418, 500, 504, 526, 578, 580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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