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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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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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6:10 ㅣ No.190393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삼권분립을 통해서 국가를 운영합니다. 삼권의 핵심은 행정, 사법, 입법입니다. 행정부는 입법부가 만든 법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합니다. 외교, 안보, 경제, 민생, 과학, 문화, 치안이 행정부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사법부는 법을 어긴 행위를 판단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무죄한 사람은 그 무고함을 밝혀 줍니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의 권한을 견제하며, 필요하다면 권력의 남용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삼권분립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독점이 됩니다. 권력이 독점되면 남용될 수 있습니다. 권력이 남용되면 부정과 부패가 자라납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 권한과 권력을 잘못 행사하면 탄핵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두 번의 탄핵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저절로 된 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피 흘리고, 깨어있었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도 삼권분립과 비슷한 역할이 있습니다. 사제, 스승, 예언자의 역할입니다. 사제는 하느님과 백성을 이어주는 사람입니다. 레위 지파가 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제는 제사를 봉헌하고, 백성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스승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계명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안내했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앞날을 맞히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예언자는 왕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면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백성이 시련과 고난을 겪을 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결과라면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다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아모스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정이 마르지 않는 냇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예언자의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의 길은 박수를 받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의 길은 하느님의 뜻을 위해 오해와 박해를 견디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의 직무와 스승의 직무와 예언자의 직무를 온전히 실천하셨습니다. 사제의 직무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교회의 성사는 예수님의 사제직을 드러냅니다. 스승의 직무로 하느님 나라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새롭게 알려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시며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언자의 직무도 실천하셨습니다.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언자의 길을 걸은 분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들만 제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능력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늘 굳건했던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물 위를 걷다가 의심이 생겨 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행동보다 말이 앞설 때도 많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모두 도망쳤습니다.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토마스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말했지만, 토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토마스는 의심했습니다. 토마스는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토마스는 부활의 증언 앞에서도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토마스를 꾸짖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서시어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의심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제자를 다시 믿음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서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 고백은 단순한 감탄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토마스가 예수님을 다시 만난 뒤에 드린 믿음의 고백입니다. 토마스는 의심했지만, 의심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토마스는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확인한 뒤에는 온 마음으로 고백했습니다. 토마스의 의심은 믿음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의심 한번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약함을 지닌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베드로의 눈물도, 야고보와 요한의 욕심도, 제자들의 두려움도, 토마스의 의심도 주님 안에서는 새로운 믿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상처가 있어도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문을 열고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의심이 있어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고백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토마스의 고백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흔들릴 때 믿음을 주소서. 주님, 저희가 의심할 때 다시 찾아와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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