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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7/4) :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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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 아모 9, 11-15 * 복음 : 마태 9, 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 <오늘의 강론> ‘단식’을 왜 하는가? ‘단식’은 요나의 재앙 경고를 들은 니네베 왕이 단식을 선포하고 회개한 것처럼,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 앞에서 교만을 내려놓는 행위로 했습니다. 또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단식하신 것처럼, 중대한 사명을 시작할 때 유혹을 이겨내고 영적으로 무장하기 위해 했습니다. 또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판관 20,26-28), 회개의 표시로(요엘 2,12), 죽은 이를 위한 애도의 표시로(2사무 7,6), 사도의 임명이나 파견하기 위해서도 했습니다(사도 13,2-3;14,23).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레위기>(16,34)에 따라, 구약의 속죄일을 지키기 위해서 했습니다. 곧 잘못을 벗고 정결해지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단식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한 바리사이들은 신심행위로 1주일에 두 번씩(월, 목) 단식했습니다. (한편, 이사야 예언자는 이웃 사랑과 정의 실천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이사 58,6-7)으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의 침통한 표정이 아닌 하느님 앞에서의 진실 된 마음을 ‘단식할 때의 바른 자세’(마태 6,17-18)로 강조하셨습니다.) 결국, ‘단식’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낮추고 오직 하느님께만 집중하겠다는 강력한 영적 표현이요, 내면을 정화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은밀하고도 기쁜 영적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영적으로 동참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식논쟁을 통해서, ‘새로운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십니다. 곧 <독서>에서 아모스가 예언한 “그날”이 온 것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말합니다. “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보라 그날이 온다. ~모든 언덕에서 세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아모 9,11-13)
“그날”, 바로 ‘신랑이 와 있는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러니 단지 ‘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몰고 온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혀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마태 9,15)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이기 때문이라고 밝히시면서, 당신 자신을 ‘신랑’이라고 밝히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마태 22,1-14)와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에서 당신 자신을 ‘신랑’으로 암시하셨고,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요한 3,29).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새 천”과 “새 포도주”에 비유하십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 9,16-17)
이제, 도래한 새 시대에는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새 부대’는 새 시대를 살아가는 ‘변화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새 포도주’를 담을 ‘변화된 삶’이 필요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는 말씀하고 덧붙이십니다. 그러니 이 비유는 ‘새것’과 ‘묵은 것’의 부조화를 강조하면서 마치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비연계성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 9,17)는 말씀을 통해, ‘묵은 것’을 잃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묵은 것’이 ‘새것’에 의해서 보존된다는 것을 제시해 줍니다. 곧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온전히 완성됨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임과 동시에 우리를 완성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로지 당신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이 저의 전부입니다. 아멘.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 9,14)
주님! 저를 결박하는 마음 속 생각을 멈추고(단식하고) 당신의 뜻 따르게 하소서. 몸으로는 단식하면서도 마음은 다투고 주먹질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선물인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식(폭식)하지 않고 내어놓음으로 당신의 생명이 퍼져가게 하소서. 제 자신 섬기기를 멈추고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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