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0일 (금)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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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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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16 ㅣ No.190542

이병우 신부님_하느님 사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마태오 복음 10장 16-23절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주님 마음, 부모 마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가톨릭에서 표어로 삼아도 될 만큼 성경의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자주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분이라고 하는데, 왜 나쁜 일들이 일어나나요?’  

 

세상의 험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느님의 입장을 부모의 마음에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아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마주하는 세상은 점차 넓어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채워갑니다. 하지만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에는 위험한 것들도 있습니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유롭게 행동하다가 다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요.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역시 아픕니다. 그러는 동시에, 주어진 자유 안에서 온전히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아이가 올바로 성장하기를 기다립니다.  

 

무조건 감싸기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다면 주님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오늘 하루,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이름과 마음을 되새겨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경태 마르티노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

 

조욱현 신부님_ 너희는 나 때문에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마주할 현실적 박해와 하느님의 신뢰를 다루고 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 때문에 사람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고, 심지어는 형벌과 박해를 받을 것이다.”(16-23절 참조)라고 말씀하신다. 역사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박해를 받았다. 사도들부터 초기 교회 신자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때문에 세상의 조롱과 배척을 당한다. 요한 복음에서 주님은 말씀신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바오로 사도도 박해를 하느님께 받은 은총으로 받아들였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리 1,29) 박해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의 불가피한 결과이며, 우리가 받은 구원과 은총을 실제로 증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라고 하신다. 이는 박해를 두려움과 인간적 지혜로 맞서지 말고, 성령 안에서 신뢰하며 나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성령 안에 머무는 자는, 인간의 재판과 박해 앞에서도 담대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자신을 변호한다.”(Sermones, 184 요약) 오늘날에도 우리는 말과 행동, 신앙의 실천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23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지혜로운 사목적 판단과 자기 보호와 사명 수행의 균형을 보여 준다. 동시에 제자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과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줄 준비를 하여야 한다. 성 바실리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박해는 하느님을 증언하는 도구다. 피할 수 있는 지혜는 사용하되,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견디고 증언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De Spiritu Sancto, Homiliae in Matthaeum 요약) 즉, 박해 속에서 살아가는 삶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과 신뢰의 삶이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피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담대히 견뎌야 한다. 말씀과 성령 안에 깨어 있는 자세를 유지하며, 언제든 박해나 시련에 직면해도 올바른 선택과 증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뜻과 사명을 따르는 가운데, 세속적 위험이나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면서, 핵심 진리를 증언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하고, 믿음 때문에 맞닥뜨리는 재판과 박해 속에서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올바른 말과 행동을 선택하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담대히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제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선교의 길, 둘 

 

오늘 복음에서는,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당신의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겪게 될 온갖 어려움을 내다보시고 걱정이 되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애틋한 마음이 읽힙니다. 아울러 마태오 복음서가 저술되던 80년대에는 사도들이 하나 같이 스승 예수님과 같은 고난의 길을 이미 걸어갔고,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나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 복음 전파의 길에 뛰어들 사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반대의 대상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이리 떼에게 넘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도들을 파견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면, 세속을 신뢰하여 영혼을 파멸시키는 타협을 하지 않는 한, 파견된 이들은 언제나 파견하신 분의 보호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세속적 신뢰와 영혼의 파멸을 경계하도록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모습”을 갖출 것을 역설하십니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어려움이 외부에서 오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우선 사도들을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회는 예루살렘의 최고의회에 준하는 지방 의회를 말합니다. 이 의회는 해당 지방 회당에 속하는 유다인들 가운데서 주요 인물 스물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사법 기능도 담당했던 조직입니다. 따라서 지방의 경우 회당과 법정은 동일한 공간을 가리켰으며, 바로 그곳에서 채찍질과 같은 체형도 가해졌습니다. 기원후 70년경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로는, 지방 의회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전달됩니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상황이 어떠하든, 사도들의 사명인 복음 전파에는 빈틈이 없어야 함을 역설하십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하는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주시며,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하는 말씀으로 불안감을 떨칠 확신을 심어 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기와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말씀과 달리, 다시 한번 박해시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이끌어 가십니다. 사도들이 “아버지의 영”의 인도로 어려운 상황에 맞서 싸울 능력을 배양했다면,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박해시대와 같은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는 그 능력을 힘껏 발휘해 나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기대 또는 신뢰가 돋보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사도들 모두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파견하신 분의 뜻을 받들었음을 상기한다면, 예수님의 기대 또는 신뢰는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부터 파견되신 성자 예수님이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수행하셨고, 이제 당신이 파견자가 되어 파견하신 사도들이 당신의 뒤를 이어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부족한 가운데서도 우리를 파견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신앙생활을 펼쳐 나가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신앙인다운 말과 행동으로 하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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