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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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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 마태오 복음 10장 24-33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 사랑받을 용기 광주대교구의 나주 성당은 ‘나주 순교자 기념 성당’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곳에서 돌아가신 네 분의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춘화 베드로 순교자는 기해박해 중 순교하셨고, 하느님의 종 유치성 안드레아, 유문보 바오로, 강영원 바오로 이렇게 세 분은 병인박해의 마지막 시기인 1872년 나주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분들의 순교록을 보고 공부하면 할수록, 현실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잔머리를 굴리고 사는 요즘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분들의 삶을 그 입을 빌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만 번을 죽어도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단순하지만 웅장한 고백입니다.
오롯이 하늘로 향했을 순교자들의 시선. 그들의 마음 안에는 오늘 복음 말씀이 계속해서 샘솟지 않았을까요?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나를 귀하게 여기신 분! 그러니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 최용감 안젤로 신부(광주대교구)⠀ 생활성서 202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
조욱현 신부님_육신만 죽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직면할 위험과 참된 두려움의 대상을 다룬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28절) 이 구절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권력이나 박해자보다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신다.(25절)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인간적 겸손을 기반으로 한다. 예수님은 제자를 친구라고 부르셨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 이는 제자직에서 중요한 원칙이다. 제자는 스승인 예수님과 동일한 가치와 권위를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걷는 삶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예수님은 참새조차도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29절), 제자들에게 모든 피조물보다도 인간에게 더욱 세심히 관심을 기울이시는 하느님을 강조하신다. 이것이 박해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묵상한다. “하느님께서 작은 참새까지 돌보시듯이, 당신의 자녀는 더 없이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의 두려움은 결코 믿음을 흔들 수 없다.”(Sermones, 93,1 요약) 즉,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세상의 박해자가 아니라, 영혼의 최종 심판자이신 하느님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또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32절)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의 믿음과 입의 고백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바오로 사도도 강조한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즉, 믿음은 마음에서 시작되어, 입과 행동으로 열매를 맺는 신앙적 실천이 요구된다. 믿음을 마음속에만 간직해서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직면하는 세상의 권력, 비난, 박해보다 하느님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마음의 믿음을 입과 행동으로 드러내며, 말과 삶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자직은 스승을 능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함께 걷고, 그분과 같은 사랑과 믿음을 실천하는 삶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고백하며, 스승과 함께 걷는 삶으로 초대한다. 세상의 두려움 속에서도 성령의 도우심과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살아가며,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행동으로 증언하는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진정한 제자로서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선교의 길, 셋 오늘 예수님은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하는 말씀으로 제자들을 향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과 제자 사이의 일정한 간격,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 또는 종을 스승과 주인에게 일치시키는 특별한 관계와, 아울러 그러한 관계의 기초가 되는 운명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파견될’ 제자들은 ‘파견하시는’ 예수님이 맞부딪치셨던 온갖 반대와 박해를 각오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파견된 자들’로서의 사명을 의식하고 그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 또는 사도들은 그들이 거둔 선교적 성공 때문이 아니라, 끝까지 ‘파견하신 분’과 운명을 함께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견지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파견하시는’ 당신과 운명을 함께하기 위한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자세로 ‘파견될’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 반대와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요구하십니다.
먼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감하게 선포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입니다(26-27절). 두려워하지 않아야 선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포의 대상은 “드러나기 마련인 숨겨진 것”이고 “알려지기 마련인 감추어진 것”, 곧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숨겨져 왔고 감추어져 있었지만,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래 이 나라는 이제 드러나고 알려질 것이며 - 한 마디로 선포될 것이며 -, 선포의 길에 우선 사도들이, 이어서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할 것입니다. 정의와 진리와 평화로 세워지는 하느님 나라 선포는 늘 반대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으나,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믿음의 공동체는 두려움을 떨치고 나서야 합니다.
다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부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합니다(28-31절). 온갖 반대와 박해 앞에서, 믿음의 공동체는 때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적대자들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을 관장하고 보장하는 분이기에, 제자들은 전적인 신뢰로써 적대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찮아 보이는 참새 한 마리의 생명에까지 관심을 보이시는 하느님 아버지는 참새보다 더 귀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는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실 정도로 지극한 관심을 쏟고 계심을 천명하십니다.
끝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는 자세를 말합니다(32-33절). 최후 심판의 잣대는 ‘주님을 앎’으로 명시됩니다. ‘알다’라는 개념은 앞서 언급한 ‘담대한 선포’와 ‘전적인 신뢰’를 전제로 하며, 나아가 성경에서 ‘알다’라는 용어는 ‘사랑하다’라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에, ‘주님을 알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선사 받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제시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사랑은 주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아울러 주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신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로 자리합니다. 오늘 하루,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심으로 보이지 않는 그분의 나라를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은총 가득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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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12일 연중 제15주일 |
19:40 | 박양석 |
| 190563 |
연중 제 15주일 복음 |
19:26 | 강만연 |
| 190562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5주일: 마태오 13, 1 - 23 |
17:09 | 이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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