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8일 (토)
(녹)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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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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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7-17 ㅣ No.190659

이병우 신부님_"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12,8)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오늘 복음(마태12,1-8)의 제목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마태12,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 빵을 먹은 사실과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12,6-8) 

 

우리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우리네 삶의 첫째 자리에 모셔 놓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큰 잘못으로 여기며, 날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인생'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을 공유합니다. 

  

인생(신상우 곡/시) 

 

《길고 길었던 겨울

봄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견뎌내고 보니 어느덧 봄이더라 

 

숨 막히게 더운 여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참아내고 보니 어느새 가을이더라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어두움

등불같은 친구 곁에 있었고

멀고 먼 길 홀로 걸을 때

누군가 내 손잡고 함께 걸으니

걸어온 길 뒤돌아보니 나의 이야기 남아 있고

빛바랜 기억과 흘린 눈물 우리의 인생이라》 

 

 

우리네 인생이지요.

소풍 왔다가 떠나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지요.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덧없음의 인생이지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4,14)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간다면,

우리네 인생이 참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확실히 그럴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오늘도 책상 앞에 놓여 있는 하느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 안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시편114,8) 

 

조욱현 신부님_내가 바라는 것은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과 실천적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가르쳐 준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 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형식보다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신다. 안식일은 단순한 법적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을 위해 주어진 날이다. 교리서는 “안식일은 하느님을 기리며 동시에 인간이 쉼과 경건을 통해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날”(2168-2172, 2184-2185항 참조)이라고 가르친다. 즉,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영적·육체적 안식과 사랑의 실천에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은 형식을 원하지 않으시고, 영혼이 올바른 사랑으로 그분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De Civitate Dei 18 요약)라고 강조한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이삭을 뜯는 것을 허락하신 맥락과 일치한다. 

 

예수님은 다윗과 아히멜렉의 이야기를 통해 법과 제사보다 자비와 사랑이 우선임을 강조하신다.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제사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호세 6,6)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보신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법은 인간의 선을 위해 존재하며, 법의 근본 목적은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Summa Theologiae I-II, q.90-94 요약)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안식일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삶으로 완결될 때 참된 신앙이 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안식일 논쟁을 주석하며 말한다. “율법은 인간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지, 인간이 율법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을 지키는 목적은 사랑이고, 자비이며,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Hom. in Matth. 39 요약)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뜯은 일을 옹호하신 맥락과 일치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준다. 현대 사회에서도 법과 규정은 필요하지만, 사람의 생명과 존엄, 필요를 위해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줄 수 있는 작은 도움, 격려, 관심이 바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희생 제물’이다. 현대인의 바쁜 삶 속에서도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살피는 실천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 형식이나 의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모두 신앙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참된 기준을 가르쳐 주신다. 법과 형식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자비와 사랑의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일상에서 작은 도움과 친절, 이웃을 살피는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모든 법의 주인

오늘 복음 말씀은 율법 준수에 최선을 다했던 바리사이들의 질문, 안식일법을 근거로 한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신법(神法)으로서의 십계명은 세 번째 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내라”(탈출 20,8; 신명 5,12) 하고 이르며, 아울러 이 계명 설정 배경을 설명합니다. 탈출기와 신명기의 안식일법 설정 배경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생명을 위한 쉼의 시간이라는 데에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십계명을 담고 있는 본문은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를 위해서,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서, 유다교는 성문 율법으로서의 ‘토라’(=모세오경)를 구체화하는 구전 율법으로서의 ‘미쉬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미쉬나는 ‘반복하다’ 또는 ‘공부하다’를 의미하는 ‘샤나’ 동사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고, 제자들은 반복해서 학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다교에서 미쉬나는 토라와 같은 권위를 지니는 율법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 미쉬나에 바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서른아홉 가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느질 금지로 시작되는 금기사항 가운데, 농사에 관한 내용이 몇 가지 있는데, 아마도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을 (다섯 번째) 타작 행위나 (여섯 번째) 곡식 등을 까부는 일로 취급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덧붙이자면, 서른여섯 번째와 서른일곱 번째 금기사항에는 불을 끄는 일과 불을 켜는 일도 포함되어 있는데, 안식일 전에 불을 끄거나 키는 일을 잊었을 경우, 지금도 주변에 사는 이방인 곧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행위를, 율법을 임의로 확대하고 해석하여, 율법 위반 행위로 단죄한 바리사이들의 율법 제일주의는 결국 안식일법 설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는 우를 범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복음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그 출처가 되는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하는 분명하면서도 명쾌한 말씀으로 바리사이들의 이의를 물리치십니다. 복음서 이곳저곳에, 예수님이 안식일에 더러운 영을 쫓아내거나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실 때 바리사이들은 동일하나 규정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하나, 예수님의 대답이 한결같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식일은 다른 계명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진정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이 아니라 자구에 매여 살던 바리사이들의 이의를 물리치시며, 제자들에게 생생한 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십니다. 모든 율법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율법 해석에 어떠한 의식과 자세를 앞세워야 하는지를 일깨우십니다.

오늘 하루, 십계명을 비롯한 이러저러한 규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가족과 이웃들에게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며 전하는, 기분 좋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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