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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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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비폭력 어제의 복음 말씀에서 확인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 행위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다섯 번째 규정인) 타작 행위 또는 (여섯 번째 규정인) 곡식 등을 까부는 행위로 확대해석하여 이의를 제기했던 바리사이들을 겨냥해,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말문을 막아버렸던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지질한 반응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는 일”이었습니다. 안식일법을 비롯한 율법 전반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여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권위와 함께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 덕에 삶의 의미를 즐기고 있었던 이들에게 예수님의 존재와 가르침은 하나의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없애버리는 일’, 곧 ‘폭력’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의 폭력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빌려, 당신은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으시는 분”,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 끝내 “민족들이 당신의 이름에 희망을 거는 분”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신구약성경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파견하신 사람들 가운데 폭력적인 존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화하고 관대한 존재들뿐입니다. 분명 힘은 있으나, 학대하고 억압하고 파괴하기 위해서 자기 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참을성이 있고 고통을 받아들이며, 상처를 수용할 줄 압니다. 그의 놀라운 힘은 사랑하고 이해하고 베풀고 용서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었던 존재 가운데 으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분을 지켜보아야 하고, 그분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어놓아야 하며,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는 진정한 구원자의 모습임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은 날로 폭력의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유지하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며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권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윤리적이든 물리적이든 폭력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애처롭게도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폭력은 폭력만을 낳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없애버려야 할 것은 바로 폭력입니다. 사랑과 인내와 선함으로 폭력을 파괴시켜야 합니다. 선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온화함과 관대함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우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이 힘이며,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힘은 온화함과 관대함, 곧 사랑입니다. 폭력은 힘이 없거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명으로, 폭력은 죽음으로 이끌어갑니다. 이웃을 폭력으로 죽음에 부치고자 애쓰는 만큼, 그 죽음은 그대로 우리의 몫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들의 눈에 그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바보 같은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뜻이며 길임을 확신하며, 자신감 넘치는 신앙인으로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하느님께서 택하신 종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 준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없앨까 모의하는 것을 아시고 조용히 다른 곳으로 물러가신 장면은, 단순히 두려움이 아닌, 인류 구원과 사랑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행동임을 가르친다.
예수님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이사 42,3)고 하셨다. 이는 그분이 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파멸시키지 않고, 언제나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는 의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꺾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참으시며 인내하신다.”(Enarrationes in Psalmos 33,2 요약)라고 말하였다.
교리서는 “그리스도의 사명은 단순히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을 회개로 이끄는 사랑의 사명”(545, 1846항 참조)이라고 밝힌다. 우리 자신도, 주님께서 참으시듯이 서로에게 관대하고 인내하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이어서 이사야 예언서를 말씀하신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 12,20-21 참조) 이는 예수님의 구원 업적이 완성되는 때,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시면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임한다.”(Summa Theologiae, III 요약)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정의와 사랑이 어떻게 동시에 이루어지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신앙생활에도 구체적 교훈을 준다. 공동체 안에서, 혹은 직장과 가정에서, 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그대로 존중하며 기다려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예수님처럼 즉각적 심판보다 회개와 변화의 기회를 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18절)라는 선언은 예수님의 완벽한 아버지 뜻 수행을 보여 준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일상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고통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을 돕는 일, 불의와 불평등을 바로잡는 일,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와 인내의 종, 하느님께 사랑받는 종으로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약하고 연약한 이들을 존중하고,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사랑과 정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마음에 드시는 사람으로 불릴 수 있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마태12,16)
'빌드 업(build up)!'
오늘 복음(마태12,14-21)은 '주님의 종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셨다고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합니다.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십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왜, 그래셨을까? 왜, 당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피해 물러가셨을까? 왜, 사람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셨을까?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여정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세상 구원을 위한 땀의 찬가인 예수님 공생활의 마지막 여정은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 십자가 죽음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근본이유입니다.
'빌드 업(build up)' 이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미리 계획된 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아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 빌드 업의 종착점'입니다. 예수님의 육화(성탄)와 땀(공생활)은 이곳까지 가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예수님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신 것이나, 당신께서 일으키신 많은 기적들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나의 빌드 업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고, 그 외의 것은 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빌드 업이지 아닐까요? 고통도 기쁨도 모두가 다. ㅎㅎ
오늘이 영원한 생명에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빌드 업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분명한 목적을 바라보며 오늘도 최선을 다합시다!
Let it be(그냥 두어라) Let it be(그대로 두어라)
(~ 시편119,17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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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78 |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분 |
2026-07-18 | 유경록 |
| 190677 |
전삼용 신부님_옳은 말만 하는데 재수 없는 사람 |
2026-07-18 | 최원석 |
| 190676 |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7/18)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2026-07-18 | 최원석 |
| 190675 |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
2026-07-18 | 최원석 |
| 190674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2026-07-18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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