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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6주일: 마태오 13, 24 -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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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경건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으로 드러난 비전은 다가온 하느님의 다스림(=하느님의 주권과 통치 자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바로 유대 경건자들과 근본적인 차이와 차별이 드러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모든 비유가 ‘하느님의 다스림과 나라’에 관한 것임은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예수님의 하늘나라에 관한 가장 중요한 비유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이 두 가지를 깊이 살펴보면 우리가 우리 시대의 악에 관해 어떤 처신을 해왔고,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반면교사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 점은 ‘선한 의도와 관계없이 선의 좌절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제자들과 구별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한 선행의 실패가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당혹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해서 꿋꿋이 자신이 해야 할 바, 곧 하늘나라의 선포를 실천해 가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리지 비유>에서 예수님은 단지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단호히 선으로 악을 대처하는 대신 자신을 악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를 견책하신 듯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선 곧 선포해야 할 하느님 나라의 가치인 밀밭에, 악과 배격해야 할 악의 가치인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 그 실체, 곧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13,28)라고 악의 실체를 인지하고 직시하고 있었으며, 하느님의 뜻과도 상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게 진솔한 세상(=교회/가정/개인)의 현실이며, 이러한 현실 상황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행동을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제자들처럼 그리스도인인 우리 역시 이런 현실 앞에서 당황스럽고 혼란을 겪을 수도 있으며 즉각, 가라지(=악)을 보고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13,28)라고 대응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잠시라도 직시하고 직면하면서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단지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런 졸속한 해결책에 “아니다. 가만두어라.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13,29~30)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농사법은 세상의 농사법과 다름을 보여줍니다. 이런 성급함은 오히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더 힘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느님의 시선, 곧 신앙의 시선에서 신중히 바라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먼저 악을 우리 가운데 두고 견디어 내자는, 것입니다. 듣기에 따라서 예수님의 처신이 엄청 소극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방안처럼 들릴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왜 예수님은 이런 방안을 제자들에게 제시하셨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의 어떤 누구도 시초에는 선과 악을, 밀과 가라지를 분명하게 알아볼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그리고 지금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목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사목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입견에 따라서 성령 운동이나 다른 신심 운동, 혹은 어떤 봉사활동이나 모임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가리지(=악)를 뽑으려다 밀(=선)까지 말살하지 않고는 악을 세상(=교회, 공동체, 가정이나 개인)에서 멀리 몰아낼 능력이 애당초 인간에게는 부족하고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밀과 가라지는 모양이 거의 비슷해서 자칫 가라지를 뽑으려다 보면 밀까지 뽑아 버릴 수가 있으며,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밀과 가라지 뿌리가 서로 얽히게 되어 있어서 가라지를 뽑아내려다 밀까지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밀과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었고, 이를 아시는 예수님은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13,30)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확실히 초대 그리스도교인은 악(=개인, 그룹이나 부류)을 자신들과 구분하고 구별 지으려고 했고 함께 더불어 공존하고 공생하기보다 배격하고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자신들의 약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종교의 엘리트 의식 곧 선민의식에서 자신들은 거룩하고 교회 밖에 사람들은 죄스럽다고 단정하고 확신했기에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는 사고 의식에 감금되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태도는 무엇보다 먼저, 일단 타인에게 악의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내 탓보다’ 늘 ‘네 탓’으로 돌려 면피하려고 합니다. 그 책임을 돌리기 시작하면 우리네 삶의 태도는 좀 더 신중하게 자기 일이나 하겠다, 는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악의 실체를 인식하면서도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꿋꿋이 선을 실행하는 길’ 밖에 달리 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 하나만이 악에 대처하는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악을 악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다 보면, 끊임없는 악순환만이 반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율법이 인간의 구원을 제약하는 곳이 어디든지 율법을 반박하였고, 오로지 하느님의 선으로만 하늘나라를 현실화하려고 묵묵히, 꿋꿋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고 거부하기보다 현실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실천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갑시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3,30.39.43) 여러분의 가정이나 공동체의 밭에도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지 않나요.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가라지를 인식하고 인지할 때,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하며 살고 계십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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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83 |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
2026-07-18 | 조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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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대구 대교구 나기정 다니엘신부의 이주일의 복음묵상입니다. |
2026-07-18 | 오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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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나기정신부의 편지 161번째- 연중 제16주일 (7월 19일)에 함께 하실 말씀은 ... |
2026-07-18 | 오완수 |
| 190680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2026-07-18 | 박영희 |
| 190679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6주일: 마태오 13, 24 - 43 |
2026-07-18 | 이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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