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수)
(백)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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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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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24 ㅣ No.190735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람은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고, 가두려 해도 가둘 수 없습니다. 바람에는 무게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예언자와 성인과 성녀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 외에는 붙잡으려 하지 않았기에 자유로웠습니다. 세상의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세상의 비난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욕심과 원망, 분노와 교만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작은 손해에도 분노하며,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세상이라는 그물에 갇히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을 비운 사람은 잃을 것이 없기에 자유롭고, 하느님께 맡기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기에 평화롭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어 가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그는 한국에 GPU 20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하였고, 이는 한국의 인공지능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선물처럼 여겨졌습니다. 한국의 기업 총수들과 깐부치킨에서 치맥을 나누며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도 인공지능의 미래를 열어 갈 새로운 기술과 사업 기회를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베라 루빈, RTX 스파크, 젯슨 토르와 같은 이름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인공지능과 로봇, 반도체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기술도 하나의 선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선물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기술이 욕심과 경쟁과 교만의 도구가 되면 사람은 더 무거워지고, 세상은 더 촘촘한 그물이 됩니다. 그러나 기술이 사람을 살리고, 약한 이를 돕고, 공동선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의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마음을 비운 사람은 기술과 재물과 성공에도 붙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도구를 사용하되,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오늘 미사의 감사송은 막달레나 성녀의 삶을 아름답게 전해줍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막달레나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교회는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첫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막달레나가 예수님께 치유 받은 여인이었다고 전합니다. 일곱 마귀가 들렸던 그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고 합니다. 전승 안에서는 막달레나가 때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은 여인과 연결되어 묵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뒤에 어떻게 변했느냐입니다.

 

막달레나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습니다. 상처에서 치유로 나왔습니다. 죄와 고통의 무게에서 사랑과 자유의 삶으로 나왔습니다. 어쩌면 막달레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나약하고, 부족하고, 쉽게 넘어집니다. 원망과 한을 품고 살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 세상이라는 그물에 걸려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갈망입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숨어 있을 때, 막달레나는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주님을 찾았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두려움보다 강합니다. 사랑은 절망의 무덤 앞에서도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능력과 재능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결심입니다. 사랑은 주님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용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바로 이 말씀의 증인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그녀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그녀를 가두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그녀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의 그물, 욕심의 그물, 두려움의 그물에 갇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욕심과 원망, 분노와 교만을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기술도, 재물도, 능력도, 성공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이웃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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