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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 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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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1. 복음 해설과 교부들의 가르침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의 첫 증인으로, 아직 어두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다. 그러나 빈 무덤을 보고도 부활을 즉시 깨닫지 못하고 시신 도난을 의심한다. 이는 인간의 이해가 하느님의 신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함을 보여 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마리아가 무덤을 찾았으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진리가 외부에 드러났음에도 그녀의 마음이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으로 눈이 열리자, 비로소 진리를 붙잡게 되었다.”(Serm. 229,2 의역)
또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름을 불러 주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의심을 몰아내고 믿음을 불러일으키셨다. 하느님이 먼저 부르지 않으시면, 인간은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다.”(Hom. in Ioannem, 108 의역) 주님의 인격적 부르심, “마리아야!”(16절)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은총의 순간이다. 이때 마리아는 “라뿌니!”(16절)라고 부르며 신앙 고백을 한다.
2. 교회의 가르침과 전례적 의미 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에게 파견된 사도”라 부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6월, 성녀의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키며 이렇게 가르쳤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가장 먼저 체험한 분으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났고, 교회에 복음을 최초로 선포한 참된 사도적 인물이다.”
교리서도 부활의 증언을 강조한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로, 제자들이 실제로 만난 부활하신 분의 증언에 의해 확인된다.”(639항)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나타나신 이들 가운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640-641 요약) 즉, 막달레나는 단순히 개인적 체험자가 아니라 교회의 신앙을 전하는 최초의 선포자이다.
3.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막달레나의 삶은 회심, 체험, 선포의 여정을 보여 준다. 죄에서 용서받고(루카 8,2)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십자가 아래 남아 있었고(요한 19,25),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였으며,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첫 사도가 되었다. 우리도 신앙 여정에서 이 길을 따라야 한다.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그 체험을 교회 공동체와 세상에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는 귀를 열자. 신앙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체험과 증언임을 기억하자. 우리도 막달레나처럼, 고통과 눈물 속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자. 교회와 세상에서 “작은 사도”로 살아가며,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자.
이병우 신부님_"마리아야?"(요한20,16)
'부르심과 응답!'
오늘 복음(요한20,1-2.11-18)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는 말씀'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으뜸 사도였던 베드로도 아니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랑 받았던 요한도 아닌, 낮게 취급 받았던 여자, 그것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은 여인입니다.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8,2ㄴ)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성모님과 함께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고, 마침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나뵈옵는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마리아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부르십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스승님!)" 하고 부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20,17)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20,18)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합니다.
"루카야!"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나를 부르십니다. 우리를 부르십니다. 미사(성체성사)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너를 통해서, 그리고 어떤 일이나 사건을 통해서 부르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주님을 말과 행동으로 이웃에게 전합니다. "제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예!" 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3,10ㄴ)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깨어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하신 많은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영육이 함께 건강하시고, 늘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잠언13,2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김건태 신부님_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오늘 우리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지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축일 미사 감사송에 ‘사도들을 위한 사도’(Apostolorum Apostola)라는 제목을 부여하면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행적과 역할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이처럼 감사송 본문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한 첫 번째 인물로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님에게 직접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호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가서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전합니다. 이 전갈에 제자들이 다녀갔으나, 다녀간 다음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전히 무덤에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랐고, 지금도 예수님을 잃고 큰 슬픔과 고통 속에 잠겨, 근심 걱정 속에 울며 하소연합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실 때 그 현장에 있었기에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을 다른 곳으로 모셔간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는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루카 복음 저자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소개하며(루카 8,2), 이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열두 번 언급됩니다. 예수님의 치유 은총으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뒤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자기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었고(루카 8,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으며,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서 지켜본 여인,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아 큰 사랑을 드러낸” 여인이었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도, 그분의 부활을 확인하려 함이 아니라, 돌아가신 다음에도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손에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던 이유입니다(루카 24,1). 그런데 그분의 주검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데,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많은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셨던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와 서 계시지만,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인 줄은 몰랐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사랑의 마음으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뵙는 데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니, 누군가 주님을 모셔갔다는 초조감과 불안감으로 훼손된 그 사랑을 완성으로 이끌어 주님 부활 신앙으로 건너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개입이 다시 한번 더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사랑, 구체적으로 그분의 사랑이 묻어나는 부르심, “마리아야” 하는 사랑의 음성이 필요했습니다. 이 사랑의 음성이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켜, “라뿌니!”를 토해내며, 나아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는 신앙고백으로 이끕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 신앙은 전적으로 사랑에 달려 있는 문제임을 확인합니다.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랑으로 가르치시고 행적을 보여주셨으며, 끝내 그 사랑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하셨기에, 사랑 없이는 부활 신앙고백도, 부활 신앙생활도 불가능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그 사랑조차 주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부활 신앙인임을 자랑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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