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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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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8-01 ㅣ No.190920

오늘 복음은 요한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레미아도 요한도 예수님을 하느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합니다. 아니 죽임을 당합니다. 제가 묵상글을 쓰면서 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묵상 글을 쓰기 전에는 먹고 사는 것에 모든 신경이 집중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준비성 하나 만큼은 철두 철미합니다. 그리고 저축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 만큼은 철두 철미했고 그리고 집장만 돈 관리 만큼은 아주 꼼꼼히 살아온 인물이 저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묵상 글을 쓰기 시작해서는 이젠 미래를 위한 준비가 중심이 아니고 묵상이 중심이 되다 보니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을 가도 사람들이 저를 보면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으로 봅니다. 하고 다니는 몰골이 좀 하대 받기 딱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저와 삼성에서 연구 소장으로 알고 지내던 분이 저를 삼성에서 퇴사 후 보시더니 이젠 보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몰골이 같이 다니기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무시 받기 좋은 몰골입니다. 중심이 변한 것입니다. 예전에 삼성에서나 혹은 다른 곳에서 직장 생활하거나 사회 생활하면서 나름 준비성 스펙 쌓기는 저도 대단했습니다. 학사2, 석사2, 박사 1이었고 나름 집도 좋은 집을 소유해야 하고 재산도 잘 준비되어 있어야 직성이 풀렸던 저입니다. 그런데 묵상하면서 판이 바뀐 것입니다. 생각도 바뀌고 인생관도 바뀌고 가야 할 길도 바뀌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아버지 어머님이 세상 떠나시면 할아버지 신부님 살고 계신 곳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습니다. 제가 모은 재산도 할아버지 신부님 계신 수도회에 헌납하고 죽으면 죽을 때에 맞추어서 기도 청한다는 말이 전부일 것입니다. 중심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재속회니 혹은 성당 단체니 하는 곳에서 부딛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시 받기 좋은 얼굴이고 행색입니다. 무시입니다. 그것이 저를 괴롭힘으로 연결됩니다. 이젠 그곳과는 인연이 없게되었지만 전 재속회 회장으로 부터도 들은 것은 사회 스펙에서 어딜 감히 ??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해? 글쎄 그분은 저의 스펙을 잘 모르시고 외양만 보고 평가하시는 분 같습니다. 삼성 시절 연구 소장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세상에서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 왜 그렇게 하고 다니냐? 그리고 삶을 능동적으로 잘 살아온 사람이 왜 패인처럼 살아!! 아니 아닙니다. 예수님 믿고 나의 중심을 예수님으로 살다보면 그렇게 변합니다. 저도 아직 갈길이 멀지만 그러나 계속 갈 것입니다. 아직 영적인 해안이 열리지 않았어요. 완전한 영적인 완덕의 7단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스펙은 아닙니다. 그러나 완전한 일치 안에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레미아와 세례자 요한은 겉에서 볼 때 완전 패인과 같은 삶이고 쫒겨 다니고 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불안 불안 저런 불안 없습니다. 그러나 그 넘어의 모습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의 삶이 그에게 보입니다.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하는 요한이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이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서 매달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온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해로데가 회개 할 수 있도록 옳은 말을 하는 모습만이 보입니다. 완전히 하느님과 일치된 삶입니다. 죽음을 맞이해도 온전히 죽음을 맞은 모습입니다. 하느님과 일치 된 삶이 그의 죽음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아도 마찬가지로 구약에서 가장 불쌍한 예언자 하면 예레미아 일 것입니다. 칼끝 앞에서 옳은 소리를 해야 하고 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간 사람이 예레미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전달하라고 한 예언자적 삶은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살아갑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다가 죽은 인물이 예레미아입니다. 어찌 보면 제가 동경하는 삶이 예레미아와 요한 같은 삶일 것입니다. 세상의 틀을 벗어나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 모습. 그러나 지금의 나와 예레미아와 요한의 모습에서 차이라면 그들은 그 죽음 앞에서 의연히 죽어 갔다는 것이고 나는 세상과의 부딛힘에 의해서 괴로워 한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지 못한 저를 봅니다. 고통은 수반되고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한 고통에 순종하고 받아 들이는 마음이 제 앞으로 과제이고 수련해야 할 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관점에서 더 헌신하는 모습이 남은 것 같습니다. 온전히 주님만 눈앞에 두고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갈등하는 모습보다는 온전히 하느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것. 하느님이 전부인 것..하느님만으로 만족한 삶이 앞으로 과제요 길인 것 같습니다. 요한과 예레미아의 삶 안에서 온전한 헌신의 모습을 봅니다. 나의 길도 같이 하느님 만으로 만족한 내가 되고자 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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