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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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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8-01 ㅣ No.190924

이병우 신부님_<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8.1)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태14,4)

 

'예언자의 소명!'

 

오늘 복음(마태14,1-2)의 제목은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와 '세례자 요한의 죽음'입니다.

 

예수님 당시 강한 권력의 상징이었던 헤로데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마태14,2)

헤로데는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보다도 못한 분으로 인식합니다.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선구자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칼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태14,4)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차지한 헤로데의 불의를 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언자의 소명'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성경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합니다.

'예언자(prophet)'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심부름꾼들'입니다.

예언자는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래서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간절한 외침인 회개를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독서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보다 더 특별한 예언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사제들(성직자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을 올바로 이끄는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2013년 11월 24일에 반포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Evangelli Gaudium)'에서 말씀하시는 교황님의 권고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마 모든 성직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어떤 분들에게는 꽤나 불편하게도 들려 왔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사제가)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와 닿지 못하게 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반성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에게 권고가 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그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예언자, 사기꾼, 협잡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51항)

 

우리 모두 참 예언자들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이 땅에 참 예언자의 모습을 지닌 사제들이 많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집회15,14ㄴ-15.17)

 

(~ 집회20,3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김건태 신부님_세례자 요한의 죽음

 

오늘 복음에서는 끔찍한 사건 하나가 소개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에는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예외에 속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오늘 이야기입니다.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하는 말씀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는 하나, 요한의 죽음 이야기가 생생하게, 마치 목격자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라고 단언할 정도로 세례자 요한의 권위와 존재는 대단했으며, 아울러 그의 죽음의 충격 또한 지대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처참한 죽음이 헤로디아의 앙심에서 촉발되었다 하더라도, 문제의 핵심 인물은 헤로데(안티파스: 우리 귀에 익숙한 헤로데가 아니라, 그의 아들)입니다. 헤로데는, 마태오 복음에서는 이 부분이 분명하지 않으나 같은 말씀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의 말을 기꺼이 듣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호기롭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의롭고 거룩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 따라서 두려워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판단, 당황해하면서도 질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관용, 이 모든 인간적인 모습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경비병을 보내 가져오라고 한 요한의 머리는 바로 자신의 인간성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부정해 버렸으니, 남은 그의 인생은 살아도 죽은 인생, 영혼 없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복음 속의 헤로데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또 다른 인물이 쉽게 떠오릅니다. 의롭고 거룩한 법정에서 죄가 없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대사제들에 의해 선동된 유다 군중 앞에서 정작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표시로 손을 씻었다고 하지만(마태 27,24), 결국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한 빌라도의 모습이 겹칩니다. 요한의 등장과 함께 메시아의 선구자로 다시 오리라는 예언자 엘리야의 귀환이 실현되었다면, 그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그대로 예시한,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예고한 사건이었습니다.

 

헤로데와 빌라도가 보여주었던 모습, 하느님 나라의 건설 도구인 정의와 진리와 평화를 박해하는 못난 행위는 나와 상관없는 모습들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들은 악의보다는 무기력, 이기심, 비열한 침묵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느냐, 아니면 나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느냐가 참 신앙인을 가름하는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이 아니라 조금만이라도 나를 희생하여, 가족들은 물론 이웃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누리도록 마음 쓰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헤로데가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오늘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순교를 전하고 있다. 요한은 하느님 율법에 충실한 예언자답게 헤로데의 불법적 결혼을 꾸짖었고, 그 결과 감옥에 갇히고 마침내 목숨을 잃었다. 예언자의 길은 언제나 위험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요한은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고, 진리의 대가를 자신의 생명으로 치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한의 순교를 이렇게 설명한다. “요한은 진리 때문에 갇히고 진리 때문에 죽었다. 그는 자유인이었고, 감옥 안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자였다. 그의 머리는 쟁반 위에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하늘에 있었다.”(In Matthaeum hom. 48 재해석) 성 암브로시오 역시 요한의 담대함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임금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았고, 세속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느님께만 굴복했다.”(De Officiis 요한 세례자 요약) 이처럼 교부들은 요한을 “마지막 예언자이자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첫 순교자”로 보고 있다. 

 

교회는 순교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으로 이해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순교는 진리에 대한 증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가장 높은 사랑의 표현이다.”(2473항) 사목 헌장은 이렇게 강조한다. “교회는 언제나 인간 존엄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며, 그 목소리가 세상 권력의 반대를 불러일으킬지라도 침묵하지 않는다.”(26-27, 42, 76항 참조) 요한은 이 교회의 사명을 몸소 예시한 첫 인물이었다. 요한 세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진리를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양심의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았는가?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권고한다. “진리는 때로 쓰라리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지 않는 입은 하느님 앞에서 더 큰 죄를 짓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헤로데의 잔치”와 같은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 권력의 탐욕, 사회적 불의, 성(性)과 쾌락의 왜곡, 그리고 약자의 희생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교회의 사명은 요한 세례자처럼 불의와 죄를 분명히 지적하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배워야 한다. 담대함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증언하는 용기와 겸손한 봉사로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과 봉사에서 참된 권위가 나온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 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요한 세례자는 자신의 피로 진리를 증언했다. 그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승리이다. 오늘 우리는 요한과 같은 예언자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가정과 일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작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참된 사랑과 봉사로 주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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