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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8주일: 마태오 14, 13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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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느끼는 점은 예수님의 취향이나 행동은 확실히 당대의 사람에게나 오늘 우리에게도 남다르셨다고 생각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님은 분명히 별난 분이셨으며 그것이 참으로 주님의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사실은 그분은 특별히 배고프고 헐벗은 가난한 자들, 소외된 사람들과 장애인들을 좋아하시고 그들과 늘 함께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삶에 지쳐 힘겨워하며 배고픈 사람들을 보실 때마다 그의 약점인 측은지심이 발동하기 시작하셔서 뭔가를 하지 않고서는 참지 못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신”(14, 13) 이유는 휴가를 떠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촌 형제이며 동반자였던 세례자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들으셨기에 외딴곳으로 물러가신 것입니다. 휴가를 위한 물러남이 아니라 피신을 위해 그리고 다시금 자신의 사도직 활동을 새롭게 재조명하기 위해 물러났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마음은 찹찹하고 무거웠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군중들이 당신께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당신을 잠시 잊은 채 그들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리시는 주님의 마음 씀씀이 한편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 역시도 그런 군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주님은 온전히 자신을 돌보기보다 측은한 군중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셨지만(=이타심), 군중은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만을 챙기려는(=이기심) 듯 대조적인 모습으로 제겐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잠시 쉬시도록 배려해 드리지 못하고 늘 우리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 주고 도와달라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싶어서 한편 예수님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저녁때까지 병자들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을 향하여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으니, 군중을 빨리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14,15)라고 말하는 제자의 심정이 딱 저의 마음인 듯싶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4, 16)고 말씀하신 바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가난한 자들아, 너희가 알아서 먹을 곳을 찾아라!’, 가 아니라 ‘나의 제자들아, 너희가 나서서 가난한 자들과 밑바닥 인생들을 찾아 베풀어라,’ 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하는 게 교회의 처신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교회가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리라 봅니다. 너희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라!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마른 자에게는 마실 물을 주는 것이며, 배고픈 자에게는 먹을 빵을 주는 것이며,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는 위로를 베푸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빵 한 덩어리, 물 한 잔의 사랑이면 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권고하자 제자들은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14, 17)하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스승이신 예수님께선 하고자 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고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의 대답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계산법 아래 이미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느낍니다. 그러기에 군중들을 예수님께서 돌려보내시도록 권고했던 것이겠지요. 늘 제자들은 함께 계신 주님을 망각하거나 자신들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실수를 범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하거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들의 방법을 스승에게 제안하기보다 오히려 ‘주님, 저희가 어떻게 할까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도와주십시오.’라고 겸손되이 청하는 마음이 더 필요했던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이는 단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빵의 기적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요한복음은 어느 아이가 가진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이 적은 양이었지만, 그것이 주님의 손에 넘겨지고, 손을 들어 아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축복을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이젠 더 이상 부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엄청난 양으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14, 19) 여기서 빵을 손에 들고 축복하신 다음에 빵을 떼어 나누어주셨다는 말씀은 성체성사를 연상하게 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도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듯이 빵을 떼어 나눔은 단순히 나눔이 아니라 삶에 지치고 상처로 찢어진 영혼들의 아픔에 예수님 친히 자기의 몸으로 함께 하심이며, 빵 뗌을 통해서 주님과 상처받은 우리가 모두 하나됨을 의미하는 중요한 신앙과 사랑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저와 함께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면 되새겨 보십시오. 저는 영성체 전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는 부분에서 빵을 떼어 분리했다가 다시 합치는 제스처를 하는 까닭이 저의 신앙에 대한 확신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는 단지 성찬의 식탁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주님의 표양, 곧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구원과 생명을 늘 세상의 찢기고 상처받은 영혼들, 군중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은 곧 사랑의 나눔과 그 사랑으로 찢기고 상처받아 문드러진 영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데 있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당부는 곧 너희가 나서서 찢기고 상처받은 영혼들과 가난한 인생들을 찾아서 먹을 것을 주어라!, 는 말씀으로 오늘 제겐 들려옵니다. 나이지리아의 어느 부족장의 말대로 “부자나라에 사는 당신들이 당신들의 부를 나누어 주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들에게 우리의 가난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교회와 교회, 교구와 교구 간의 나눔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먹고 난 후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모아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남은 것일망정 모아서 아직도 거저 얻어먹지 못하고 거저 얻어 마시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위함이지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아빠 하느님,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죽음도, 삶도, 절망도 아픔도, 그 밖의 어떤 것도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늘 나눔과 일치의 성사인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성찬례 안에서만이 아니라 성찬례 밖에서 그 사랑을 나눔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밖에 없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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