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결정적인 십년 ― 배교와 악의 신비가 드러나는 마지막 때 |
|---|
|
1988년 9월 18일, 프랑스 루르드에서 성모님께서는 마리아 사제운동의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한 ‘다락방’ 모임에서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인류가 주님의 재림을 앞둔 종말의 때에 들어서고 있으며 앞으로의 “십년”이 지극히 중요하고 결정적인 기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9. 십년이라는 기간,3) "그것은 십년이라는 기간이다. 지극히 중요한 십년이다. 결정적인 십년이다. 이 기간을 너희는 나와 함께 지내기 바란다. 너희가 주님 재림의 종말적 시기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니, 이는 너희를 내 티 없는 성심의 승리와 내 성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오심으로 이끌어갈 시기이다."
성모님께서는 이어서 이 기간 동안 “때의 참”(La pienezza del tempo)이 이루어지고, 여러 해 동안 이어져 온 정화가 그 극에 달하여 고통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9. 십년이라는 기간,4-6) "이 십년이라는 기간 동안, 라살레뜨의 발현(1846년 9월 19일)에서부터 마지막이 될 현재의 발현들에 걸쳐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때의 참'(La pienezza del tempo)이 이루어 질 것이다." "이 십년이라는 기간 동안, '성서'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의 재림에 앞설 대환난기(마태 24,15-28; 마르 13,14-23; 루가 21,20-24 참조)가 올 것이다."
그리고 배교의 확산과 함께 이미 은밀히 작용하고 있는 “악의 신비”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89. 십년이라는 기간,7) "이 십년이라는 기간 동안, 갈수록 커지는 배교의 확산을 통해 은밀히 활동해 온 악의 신비([200주년]성서 2데살 2,7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385)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미 작용하고 있는 무법의 신비>
여기서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악의 신비”는 성경의 말씀과 직접 연결됩니다. 성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주님의 재림에 앞서 배교하는 사태와 무법자의 출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보다 앞서 이미 작용하고 있는 ‘무법의 신비’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2테살 2,7) "사실 그 무법의 신비는 이미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저지하는 어떤 이가 물러나야 합니다."
따라서 ‘무법의 신비’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새로운 악의 세력을 뜻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이 이미 작용하고 있는 신비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질서와 진리를 거부하고, 거짓과 불의를 받아들이도록 유혹하는 악의 활동이 이미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도 1995년 8월 5일 산토메로에서 주신 548번 메시지에서 ‘무법의 신비’에 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시 오류와 이단, 악한 표양이 만연하고 있음에도 이를 바로잡아야 할 이들의 무관심과 타협으로 침묵이 흐르고 있으며, 대대적인 배교가 퍼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48. 흰 눈송이,9-10) "나는 또한 너희에게 간교하고 악마적인 덫을 놓는 프리메이슨의 활동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일치의 중심과 기초로 세우신 교회 내부에 침투하여, 거기에 그들 세력의 본거지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근심하지 마라. 이는 ‘무법의 신비’(2테살 2,7)에 속하는 것인즉, 교회는 그 초창기부터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는 일이다. 사실, 사탄은 초대 교회의 ‘사도단’에도 침투했으니,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인 유다를 부추겨 배반자가 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무법의 신비는, 가공할 온갖 악이 판을 치는 너희의 이 시대에 그 정체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처럼 성모님께서는 배교가 확산되는 가운데 무법의 신비가 더욱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의 신비’는 ‘신앙의 신비’ 안에서만 이해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85항은 이러한 악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 개정 제2판 18쇄, 2023.05.01. 기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385항)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모든 업적도 선하다. 그러나 아무도 고통의 경험과, 자연계의 ─ 피조물 고유의 한계성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 악을 피할 수 없으며, 특히 윤리 악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찾았으나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하였으며, 마침내 살아 계신 하느님께 돌아섬으로써 그의 고통스러운 탐구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악의 신비’(2테살 2,7)는 ‘경외의 신비’로써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계시는 만연되어 있는 악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은총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의 기원 문제를 숙고할 때, 악을 홀로 정복하신 그분께 우리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야 한다. 교리서가 가르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악의 신비는 악 자체만 바라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 왜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는지, 왜 의로운 사람들까지 고통을 겪는지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완전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의 문제를 깊이 바라볼수록 우리의 시선은 악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악을 홀로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가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1티모 3,16)라고 선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신앙의 신비 안에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영광 속으로 올라가신 주님이 계십니다.
교리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시가 만연한 악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은총을 보여 준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배교와 악의 신비가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시선이 악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악이 커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하느님의 은총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배교와 교회의 마지막 시련> 이러한 성경의 말씀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75항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675항)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는 많은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게 될 마지막 시련을 겪어야 한다. 교회의 지상 순례에 따르는 이 박해는, 진리를 저버리는 대가로 인간의 문제를 외견상 해결해 주는 종교적 사기의 형태로 ‘죄악의 신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최고의 종교적 사기는 거짓 그리스도, 곧 가짜 메시아의 사기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과 육신을 지니고 오신 하느님의 메시아 대신에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교리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교회가 마지막 시련을 겪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시련은 많은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을 것이며, 교회의 지상 순례에 따르는 박해를 통하여 “죄악의 신비”가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악이 단순한 폭력이나 박해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리서가 말하는 종교적 사기는 진리를 저버리는 대가로 인간의 문제를 외견상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절정은 거짓 그리스도, 곧 가짜 메시아의 사기입니다.
이는 2테살로니카 2장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무법자가 나타날 때 그가 사탄의 작용으로 온갖 힘과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속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2테살 2,9-10) "그 무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으로, 그는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멸망할 자들을 상대로 온갖 불의한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여 구원받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도 1992년 12월 31일 루비오에서 주신 485번 메시지에서 이 말씀을 설명하시며, 그리스도의 적이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 자신을 하느님처럼 내세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예배하게 하는 것을 ‘흉측한 독성죄’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사탄의 작용으로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켜 사람들을 속일 것이라고 2테살로니카 2장의 말씀을 다시 인용하셨습니다. 이어 성모님께서는 이 독성죄가 하느님께 대한 참된 예배와 미사성제를 훼손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하시며, ‘매일의 제사’를 거룩한 미사로 해석하고, 그 미사성제가 폐지되는 것을 그리스도의 적이 저지를 ‘흉측한 독성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85. 마지막 때,15-21) "그는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들에 맞서 자신을 그보다 더 높이 들어 올립니다. 그리하여 신으로 자처하며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 앉습니다. 그 무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으로, 그는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멸망할 자들을 상대로 온갖 불의한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2테살 2,4.9-10.) "그러므로 예언자 다니엘이 ― 독자는 알아들으라 ― 고 덧붙이며 말한 대로 흉측한 독성죄가 저질러지는 것을, 곧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공동번역 마태 24,15)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 흉측한 독성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들으려면 다니엘 예언서의 다음 대목을 읽어보아라. "가거라, 다니엘아. 이 말씀은 마지막 때까지 비밀에 부쳐지고 봉인되어 있어야 한다. 그동안에 많은 이가 정화되고 순화되고 단련되지만, 악인들은 줄곧 악을 저지를 것이다. 그리고 악인들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지만, 현명한 이들은 깨달을 것이다."(다니 12,9-10) "매일의 제사가 폐지되고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 곧 흉측한 우상이 세워질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흐를 것이다. 행복하여라, 천삼백삽십오 일이 될 때까지 견디어 내는 이들!"(다니 12,11-12 참조) 매일의 제사는 바로,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모든 곳에서 주님께 바쳐지는 순수한 봉헌식인 '거룩한 미사'이다. 미사성제는 예수께서 '칼바리아'에서 이루신 희생 제사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차 열교(裂敎)의 교리를 받아들인 자들이 미사는 희생 제사가 아니라 다만 거룩한 만찬, 곧 예수께서 최후 만찬 석상에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한 미사' 집전이 폐지될 것이다. 이처럼 매일의 제사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적'에 의해 이루어질 흉측한 독성죄이다. 이 일이 약 삼년 반 동안, 즉, 천이백구십 일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 메시지를 교리서의 가르침과 함께 바라보면, 종교적 사기가 단순한 거짓말이나 속임수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인간이나 어떤 우상을 하느님보다 높이며, 참된 신앙과 예배를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형태의 기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말의 시기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생각을 앞세우고, 복음의 요구보다 다른 가치와 이념을 따르며, 마침내 인간이나 우상을 하느님보다 높이고 그것을 믿고 따르게 될 때, 인간은 진리를 저버리고 참된 예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 할 때>
교리서 제676항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676항) 거짓 그리스도의 이 사기는, 역사를 넘어 종말의 심판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역사 안에서 이룬다고 주장할 때마다 이미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장차의 메시아 나라를 왜곡한 이른바 ‘천년 왕국설’과 그 완화된 형태까지도 배격했으며, 특히 “본질적으로 사악한” 세속화된 메시아 신앙의 정치적 형태를 배격했습니다.
교리서는 거짓 그리스도의 사기가 역사 안에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곧 하느님의 나라를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역사 안에서 완성하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경고입니다.
인간은 과학과 기술, 정치와 경제, 사회제도와 문명의 발전을 통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인간 스스로 완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구원자의 자리에 놓을 위험이 있습니다.
교리서가 이러한 세속화된 메시아 신앙을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승리는 인간적인 진보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리서 제677항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677항) 교회는 그 죽음과 부활 안에서 주님을 따르는 이 마지막 파스카를 통과해야만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상승적인 발전에 따른 교회의 역사적 승리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신부를 하늘에서 내려보내실 하느님께서 악의 마지막 발악에 대해 승리하심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악의 반역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는, 지나갈 이 세상의 우주적인 마지막 동요가 있고 나서 최후의 심판의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교회는 인간의 힘으로 점점 발전하여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마지막 파스카를 통과해야만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리서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 나라는 교회의 역사적 승리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악의 마지막 발악에 승리하심으로써 완성됩니다. 따라서 교회의 최종적인 희망은 세상의 힘에 있지 않습니다. 정치적 힘에도, 경제적 힘에도, 군사력에도, 인간의 지혜에도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악의 마지막 발악이 아무리 강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최종적인 결말은 아닙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선포하듯, 주님께서는 당신 재림의 광채로 무법자를 없애실 것이며, 교리서가 가르치듯 최종적인 승리는 하느님께 속합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것은 ‘봉헌’이다>
이제 성모님의 말씀을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결정적인 십년”을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호기심으로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히려 기도와 봉헌, 신뢰와 맡김의 삶을 요청하셨습니다.
(389. 십년이라는 기간,10) "기도의 ‘다락방’이 많아지게 하고, 내게 대한 지극한 신뢰와 자녀다운 맡김의 정신으로 살아가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못내 알고 싶어하는 헛된 호기심에는 빠지지 말아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종말에 관한 말씀의 목적은 미래의 날짜를 계산하거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회개와 기도, 봉헌과 신뢰, 복음에 대한 충실함으로 이끄는 데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가 “은총과 성덕의 새 시대를 위한 새싹”이 되도록 기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화의 시대는 회개를 통해 새롭게 되는 시대, 죄에서 돌아서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시대이며, 성덕을 향해 부름받는 시대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성모님의 메시지가 묵상하도록 초대하는 배교, 대환난, 무법의 신비,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종적인 승리라는 주제들은 성경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안에서도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그리스도께 충실하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배교가 확산될수록 우리는 진리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무법의 신비가 더욱 드러날수록 우리는 악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이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 할수록 우리는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더욱 굳게 믿어야 합니다. 고통과 정화가 깊어질수록 더욱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결정적인 십년”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맡기고, 티 없으신 성심 안에서 예수님께 더욱 온전히 나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이미 악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마지막 장면은 악의 승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티 없으신 성심의 승리도 결국 이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기다리는 마지막 승리 역시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악의 마지막 발악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헛된 호기심이 아니라 회개하고, 기도하고, 봉헌하며, 진리를 지키고, 예수님께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준비입니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2980 |
(세계청년대회) 교회에 맡겨진 임무 ―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
2026-08-10 | 박소영 |
| 191118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
2026-08-10 | 박양석 |
| 191117 |
2026년 8월 10일 월요일 안부 인사 올립니다 |
2026-08-10 | 이정임 |
| 191116 |
생활묵상 : 가슴으로 하는 사랑 |
2026-08-10 | 강만연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