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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그분은 왜 사제에서 무신론자가 되어야만 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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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에 우연히 교우로부터 식사 중에 한 사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교구의 사제이고 26년 가까이 신부 생활을 하신 분이었는데 대략적인 결과만은 알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 사제였다가 무신론자가 된 사실을 가지고 저는 비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비난을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면직됐다고 해서 저한테 어떤 피해를 주신 것도 전혀 없기 때문에 저는 그분을 평가할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 면직을 됐든 억울한 일을 당해서 면직이 됐든 그 자체를 가지고 물론 항변하는 마음 때문에 또는 교구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런 환경에 놓였다고 해서 분풀이 같은 목적으로 무신론자가 돼 천주교의 신앙과 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억울한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건의 전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면직이 되지 않았다면 무신론자로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또 천주교의 허구에 대해 세상에 책을 출판해 알릴 수가 있었겠는지를 되물어본다고 했을 때 과연 자신있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비난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역시도 그분의 선택이고 그 선택도 한 인간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소를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간혹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할 때 그 부르심은 정말 직접적인 대상인 하느님 당신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폭넓은 의미에서는 이때 하느님은 절대자 하느님만을 지칭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성소라는 정의를 대부분 성소를 담당하시는 신부님이나 아니면 신부님으로부터 강론을 통해서 정의를 하실 때 그 정의에 비추어서 보면 이와 같은 현실에서는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간세상 같으면 직원을 채용했다가 채용의 결격사유가 있으면 채용을 취소할 수가 있습니다. 이 원리를 성소에도 과연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적용한다면 이건 종교를 떠나 세상사람들의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만약 전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으로만 해석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그런 일까지 앞을 내다보시고 이미 사제로 서품되는 걸 사전에 원천봉쇄를 통해서 사제가 되는 길을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막으셨어야 하는 게 이치에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논리를 전개하는 건 성소라는 걸 부정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성소라는 게 꼭 하나로만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많은 성소 신부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또 성소는 변경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건 충분히 이해를 할 수가 있지만 자신의 성소에 대한 어떤 문제점이 있어서 변경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전적으로 그 십자가를 지면 될 일인데 그로 인해 다른 일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신앙이나 신에 대한 생각까지 자기가 몸담았던 종교에 대해 비판을 하다 못해 신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건 이건 설사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 인간적인 면에서도 신앙을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닙니다. 그분 말로는 지금의 사제를 인용해서 종교를 불모삼아 무지한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신의 존재를 빙자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직 생활을 한다고 주장을 하는 건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분이 어떻게 해서 무신론자가 된 것인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안타까운 내용이지만 그분의 인생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그 교구에 잘 아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 신부님께 개인적으로 한번 이 면직된 신부님에 대해 여쭤보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분을 잘 아실지 그 여부를 떠나서 설사 잘 아신다고 해도 저한테는 설명을 해 주실 수 있는 신부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외부에 공개를 하지 않겠지만 그분은 정말 솔직담백하게 항상 대답을 해 주시는 스타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입장이 곤란할 것 같은 질문에도 인간적으로 솔직한 답변을 하십니다. 저는 그래서 그 신부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 경우 사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현상을 좀 더 보겠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한 속사정은 모르지만 상식적인 판단으로 결과만 놓고 봤을 땐 설사 자신이 사제 생활을 하면서 겪어 보니 실제 모든 사실이 신학교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해 하느님의 부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는데 사제 생활을 하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다 보니 허구였다는 게 설령 발견이 됐다고 해도 이게 흔히 인간세상에서 말하는 공익을 위해, 대의를 위해 한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고 아무리 좋은 선의를 가지고 한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자신이 주장한 게 실제로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단순히 세상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그냥 이 세상의 일로 끝나면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지만 그게 만약 그 사람의 영혼에 그것도 영원히 존속하는 문제인데 그런 책임을 충분히 질 수 있을 만큼 확실한지 그 자체도 스스로 그런 주장을 하기 전에 고민해봤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어 보지 않고 대충 전체 목차를 보면서 느낀 게 그분이 주장하는 사실 진위 여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억한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신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서적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공개한다는 건 인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인륜적으로도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이 역시 속된 표현이지만 그분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그분이 지었어야 할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수많은 신자들 같은 경우에는 신자와 신부 사이에 억울한 일이 안 일어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어떻겠습니까? 신자도 사제로 인해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 면직된 신부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왜 일반 평신도가 그렇게 하지 않는지 그분이 신부였던 시절로 되돌아가 다시 그 점을 묵상해본다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실감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일반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고 해도 그 고통을 신앙 안에서 신앙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신앙인이면 신앙인답게 신앙으로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다 써야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건 어쩌면 비겁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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