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3일 (목)
(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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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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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6-08-12 ㅣ No.191159

 

2026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일등의 영광을 차지할까? 당연히 아름다움을 첫 번째로 뽑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인대회의 순위를 보면 이상합니다. 1등을 진(眞), 2등을 선(善), 3등이 미(美)입니다. 아름다움보다 선함이 중요하고, 이 선함보다도 올바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등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등수의 의미는 전혀 보지 않고, 그저 덜 중요하다고 하는 아름다움만 바라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입니다. 물질과 세속적인 것에 순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 채우는 것이 최고이고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만 잘 살면 그만일까요?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에 집중하면 해야 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해야 할 것이 때로는 도저히 실천하지 못할 것처럼 무거운 무게를 가진 것도 있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데, 이 정도까지 해야 할까 싶은 것도 너무 많습니다.

 

만약 이 세상 삶 안에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그냥 세상의 논리대로 사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세상을 모두 마치고 하늘 나라에 가야 합니다. 이 나라는 사랑의 삶을 산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감사의 마음을 품는 사람만이 받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실천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라고 묻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전통에서는 세 번 정도 용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기에, 꽤 너그러운 제안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계산법을 완전히 뛰어넘는 말씀입니다. 카인의 후손 라멕의 복수의 노래를 보면,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라고 나옵니다. 이를 정확히 뒤집으십니다. 폭력과 복수가 끝없이 증폭되는 세상의 법칙을, 한계 없는 무한한 용서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 무한한 용서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기 위해 셈을 하는 임금의 비유를 이야기하십니다.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이 자기 빚을 다 탕감받았지만,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서는 자비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탕감받았는지를 기억하면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압도적인 사랑과 용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로써 구원이라는 가장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단죄하는 모습은 자기가 받은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아름다움은 스스로, 혼자서, 문득 발견하는 것입니다(다자이 오사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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