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7일 (월)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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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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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05 ㅣ No.191251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19,21ㄱ)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오늘 복음(마태19,16-22)은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19,16)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19,17)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십계명 중에서 '이웃 사랑의 계명'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태19,20) 하고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19,2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던 그 젊은이는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이상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완전한 사람이 되는 구원의 길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기뻐하기는 커녕 슬퍼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완전한 믿음, 완전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적당히 믿고, 적당히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 젊은이는 가지고 있는 재물에 집착한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하고 떠나갑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나의 구원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위해 그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어제 복음묵상글에서 잘못 표기된 '회계하는 이방인이 되자!'를 '회개하는 이방인이 되자!'로 바로 잡습니다. ㅎㅎ

 

행복한 날 보내세요♡

 

(~ 예레6,30)

 

조욱현 신부님_하느님 나라와 부자 젊은이 

 
오늘 복음에서 한 부자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아와 묻는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16절)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계명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모든 계명을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대답한다. 그는 겉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내적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20절)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21절) 
 
젊은이는 계명을 지켰지만,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단순한 율법 준수가 아니라, 제자직의 길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은 단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더 큰 길,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과 당신을 따르는 길을 제시하셨다. 이것은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Hom. in Matth. 63 요약) 즉, 율법의 준수는 출발점일 뿐, 제자직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복음은 젊은이가 “슬퍼하며 떠나갔다.”(22절)라고 전한다. 왜냐하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22절)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계명을 지켰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재물을 버릴 용기는 없었다. 그는 계명 준수의 기쁨보다 재산 상실의 슬픔을 더 크게 느꼈다.”(Sermones 요약) 재물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집착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젊은이에게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21절)라고 약속하신다. 이는 재물을 포기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얻는 길임을 가르치신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네 창고에 가득한 것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다. 네가 쌓아 둔 것은 그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할 수 있다.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은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Hom. de divit. 7) 즉,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정의의 요구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교리서는 말한다. “재물에 대한 집착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한다.”(2547, 2053항 참조)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자의 필수 조건이다.”(2443-2449, 544항 참조) 따라서 복음적 가난은 단순히 물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온전히 마음을 두는 것이다. 오늘 젊은이는 영원한 생명을 원했지만, 결국 재물에 묶여 슬프게 떠나갔다. 이는 큰 교훈을 준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단순히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따라나서는 것”이다. 바로 그분의 길,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선한일 

 

오늘 예수님의 대화 상대는 어떤 사람입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 사람은 젊고, 가진 것이 많고, 평소에 율법 준수에 성실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유다 전쟁사라는 역사서를 남긴, 1세기 유다의 정치가이며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당시에는 바리사이파에 입당하기 전에 이름난 종교 지도자들을 두루 찾아다니는 관습이 있었으며, 자신도 청년기를 그렇게 보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이 젊은이도 그러한 전통에 따라 예수님을 찾은 것으로 보이며, 율법 준수는 따라서 기본에 속했을 것입니다.

 

유다교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이란 우선 하느님에게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음을, 나아가 하늘 나라에 이르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길은 오직 하느님 뜻이 담긴 율법 준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젊은이로서는 그 많은 율법 가운데, 다시 말해서 글로 쓰여 있던 성문 율법(=구약성경 토라)과 말로 전해진 구전 율법(=미시나, 훗날 탈무드의 기초가 됨)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미 있는 율법인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지금도 그러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율법 가운데 율법, 율법의 심장이라 말할 수 있는 십계명을 들어 답하십니다. 흔히 우리는 십계명 가운데 1-3계명을 하느님에 관한 계명으로, 그리고 4-10계명을 사람에 관한 계명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 또는 하느님 섬김에 관한 계명인 1-3계를 생략한 채, 인간 사회에 관련된 계명들만 언급하고 계십니다. 젊은이에게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뻔한 내용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율법 라삐들이 한목소리로 그렇게 가르쳤던, 자신이 보기에도 가장 중요하게 보였던 하느님에 관한 율법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의 반응은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젊은이의 퉁명스러운 이 반응으로 보아 당시 유다교 지도자 또는 지도자가 될 사람들의 의식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로 치부하고 있는 주요 잣대는, 하느님 사랑 또는 섬김에 관한 계명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 관한 계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들을 중시하고 철저하게 지켜나갈 때, 비로소 하느님 사랑에 들어와 있음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이 바로 이웃 사랑에 있음을 역설하고 계신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이웃 사랑을 그런 것들로 취급하고 있는 이 젊은이가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현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서 그 길을 여쭌 젊은이와의 대화 속에서, 그 길을 알려주시면서도,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의 선물임을 넌지시 일러주십니다. 하느님 사랑이든 이웃 사랑이든, 그것은 구원이라는 이 무상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수밖에 없음은, 내일 복음 말씀 속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이 일러주신 길 따라 이웃 사랑을 통해 하느님 사랑에 이를 수 있음을 가슴에 새기며, 그것조차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임을 살펴나가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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