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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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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마태20,1)
'하느님께 맡겨진 존재들!'
오늘 복음(마태20,1-16)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이 비유에서 '선한 포도밭 주인'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포도밭 주인이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듯이, 하느님께서도 하느님 구원 사업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불평불만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비유에서 불평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포도밭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20,13.15)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이렇게 끝맺습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20,16)
구원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 손에 맡겨져 있는 절대적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불만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옹기장이 손에 든 진흙과 같은 존재들이며, 옹기장이이신 하느님께 내 맡겨진 존재들입니다.
이것도 믿음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기쁨도 고통도 모두.
그리고 순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세례를 통해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성직자라고, 내가 수도자라고, 내가 신자라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구원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신분에 맞는 합당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14,17)의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 함께 노력합시다!
(~ 예레13,27)
조욱현 신부님_포도밭의 일꾼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의 일꾼들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은총과 정의를 가르치신다.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나가 일꾼들을 불러 모은다. 어떤 이는 아침 일찍, 어떤 이는 정오에, 또 어떤 이는 오후 늦게 불려 왔다. 그러나 주인은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주었다. 이때 먼저 온 이들은 불평한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12절) 그들의 불평은 단순한 계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가 받은 은총을 시기하는 마음 때문이다. 주인은 이렇게 답한다. “친구여,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13.15절)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인간적 정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자유로운 은총이 기준이 됨을 드러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이 일꾼들을 불러 모으는 부르심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비의 문제임을 본다. 하느님은 각 사람을 각기 다른 때에 부르시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생명을 주신다. 그분은 차별 없이 은총을 주시는 분이다.”(Hom. 64 요약)라고 하였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해석한다. “포도밭은 세상이며, 일꾼은 신자들이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에, 어떤 이는 젊을 때, 또 어떤 이는 노년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 그러나 주님의 상급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왜냐하면, 생명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모두에게 충만하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이다.”(Comm. in Matt. 요약) 성 아우구스티노는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것은, 먼저 불린 자들이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늦게 불린 자들도 똑같이 은총을 얻는다는 뜻이다. 구원은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하느님 무상의 은총에 달려 있다.”(Sermo 87 요약)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의 정의는 우리의 공로에 따라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에 따라 베풀어진다. 우리가 받는 품삯은 우리가 일한 대가가 아니라, 주님의 후덕한 손길 때문이다.”(Hom. in Evang. 19 요약)라고 한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공로 경쟁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언제 불림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는 현재의 태도가 중요하다. 시기와 질투는 하느님 나라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다른 이에게 베풀어진 은총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참된 제자의 자세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계산된 품삯이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에서 오는 무상의 은총이다. 우리는 그 은총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가 같은 은총을 누릴 때 함께 기뻐하는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샘법
어제의 말씀을 바로 뒤따르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자녀로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비유로 일러주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어떤 구체적인 특정 장소를 떠올리게 됩니다.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가 찾아가는, 이름하여 ‘일용직 인력시장’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초조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하다가, 운이 좋으면 하루를 아침부터 행복하게 일하고, 운이 나쁘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초조와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바로 이 인력시장입니다. 예전에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하였다.” 아무리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른 아침에 바로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운 좋은 사람, 일자리 문제로 조바심을 떨치고 일만 하면 되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등이 그 뒤를 이었을 것이며, 마지막 시간에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온종일 초조감에 떨어야 했던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품삯이 지급될 때 소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 밭 주인에 대한 불만입니다. 계약에 따라 품삯으로 정한 ‘한 데나리온’ - 1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을 말합니다 - 에 대한 불만입니다. 사실 이 불만은 밭 주인의 ‘후한 마음’을 비난하는 역설이 되고 맙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거저 주어진 ‘일자리’, 그러기에 아침부터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된 일자리라는 ‘구원 선물’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면서, 자신보다 늦게 일자리를 얻게 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축하하며, 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허락해 준 밭 주인의 ‘후한 마음’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 마땅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마치 우리보다 늦게, 때로는 아주 늦게,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거저 받은 형제자매들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며 사랑 실천에 더 매진해야 하는 신앙 자세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 형제자매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구원이라는 선물을 맛보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과분한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참모습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 하루, 일찌감치 우리를 불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더 기도하고 더 봉사하고 더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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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착한 목자는 바빠야 합니다! |
2026-08-1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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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
2026-08-1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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