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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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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22,36)
'참사랑을 하자!'
오늘 복음(마태22,34-40)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22,3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6,5)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19,18)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22,37-40)
이론적으로 사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실행해야 할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 두 사랑, 이 두 계명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실행해야 할 '가장 큰 계명'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 하나'를 물었던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사랑',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거짓사랑이 아닌 참사랑을 합시다! 참사랑은 오늘 복음이 가르쳐 주는 방식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가 되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예레17,10)
곰곰이 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성찰해 봅시다! 하느님을 올바르게 그리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내 이웃을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있는지?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분리되어 있지는 않은지?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면서 이웃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랑은 거짓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배제된 이웃 사랑도 거짓사랑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보면.
참사랑, 하나의 사랑을 위해서 오늘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품어 안는 방법으로.
(~ 예레18,2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가장 큰 계명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묻는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36절)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절)라고 하셨다. 그리고 곧이어 둘째 계명으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9절)라고 덧붙이신다. 첫째 계명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자, 모든 선의 기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 없이는 그 어떤 선행도 참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둘째 계명은 이 사랑의 열매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온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40절)라고 선언하신다. 즉, 성경 전체의 요약이자,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사랑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라는 말씀처럼,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증거이다. 이웃을 외면하며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네가 침묵하든, 말하든, 책망하든, 용서하든, 모든 것을 사랑 안에서 하라. 이 두 계명은 모든 계명의 요약이다.”(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요약)라고 하였으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리스도께서는 첫째 계명을 제시하시면서 곧바로 둘째 계명을 연결하셨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계명은 마치 뿌리와 열매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다.”(Homiliae in Matthaeum, Hom. 71 요약)라고 하였다. 오리게네스는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한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 속에서 완성되며,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에서 힘을 얻는다.”(Commentarium in Matthaeum, 22,37-39 요약)라고 하였다.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 사랑이 없는 이웃 사랑은 공허하며, 이웃 사랑이 없는 하느님 사랑은 거짓이다. 참된 계명 실천은 이 둘을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Homiliae in Evangelia, Hom. 30 요약)라고 가르친다. 하느님 사랑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며, 이웃 사랑은 그 사랑의 구체적 실현이다. 이웃은 “보이는 하느님”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계명이며, 그 안에서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완성되는 사랑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가장 큰 계명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모였다.” 하는 언급으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 직전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과 부활을 주제로 논쟁을 벌이시며, 하느님은 “죽은 이들이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는 결론으로 사두가이들의 논리를 제압하셨습니다. “군중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였다” 하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적대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존재가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입니다. 반대 세력이라는 측면에서 이 두 종교 단체는 공동의 관심을 보이지만, 실은 이들 역시 서로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사도 23,6-9가 이 적대 관계를 잘 설명해 주며, 정치적으로도 바리사이파는 반(反)로마적, 사두가이파는 친(親)로마적 경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바리사이들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다가서며,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집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 많은 율법 가운데 어떤 것이 첫째가는 것인지 하는 질문은 율법 교사들이 자주 접했던 질문이며, 그들 자신도 궁금했던 주제입니다. 첫째가는 계명이 그들의 모든 종교적 삶을 결정짓는 요소로 인식되었기에,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이라면 피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으며, 오늘은 예수님이 그 자리에 서십니다.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전혀 새로운 가르침은 아닙니다. 이미 유다인들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구갑’에 넣어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되뇌던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의 내용입니다(신명 6,4-5). 그런데 예수님은, ‘첫째가는 계명’이 질문 대상이었음에도, 묻지도 않은 ‘둘째가는 계명’을 덧붙이시며, 첫째가는 계명 못지않은 계명으로 선언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제한이 없으며, 이웃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며, 이웃 사랑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 사랑에 이를 수 있다는 확언입니다. 오늘 가르침을 끝맺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하는 말씀이야말로, 성경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씀, 전대미문의 새로운 가르침으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을 통해 사랑으로 가르치셨고, 수난과 십자가상 희생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기에 권위와 믿음을 동반함을 고백하며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의 가르침, 하느님 말씀의 전부요 핵심임을 일러주십니다.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이 사랑을 이웃 사랑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사명 앞에 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서 힘들어하는 이웃을 살피는 가운데,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맘껏 펼쳐나가는, 의미 가득하고 보람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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