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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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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4,34ㄷㄹ)
'우리도 순교자가 되자!'
오늘 복음(루카4,31-37)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4,34) 예수님께서 그 마귀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4,35)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 사람에게서 나갑니다.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를 멸망시키러 오신 분이십니다. 마귀의 영을 쫓아내시는 분이십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마귀도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봅니다.
마귀도 알아보는 하느님을 우리도 잘 알아보고 있는가? 성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 말씀 안에 계시는 하느님, 피조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우리도 잘 알아보고 있는가?
오늘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두 번째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하시고,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9월 1일부터 생태계의 주보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인 10월 4일'까지는 교회가 정한 '창조시기'입니다. 2026년 창조시기의 주제는 '살아 있는 물'(에제47,9.12)입니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과 '창조시기'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먼저 창조주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아름다운 피조물들을 떠올립니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들을 잘 다스리라 하신, 잘 보존하라 하신 인간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명령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창조주 하느님의 이 명령을 잘 지켰는지를 성찰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실천할 것을 다짐합니다.
실천이 참으로 힘듭니다. 삶의 자리에서 희생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감수'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순교'라고 생각합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키신 분들'입니다. '순교로 우리에게 신앙을 물려주신 분들'입니다. '굳건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간직하신 분들'입니다.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순교자가 됩시다!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을 알아 뵙는 순교자가 됩시다! 땀의 순교자가 됩시다! 하느님의 뜻을 잘 따라가는 순교자, 희생과 불편을 감수하는 순교자, 우리 모두의 집인 지구를 살리는 일에 적극 동참하는 땀의 순교자가 됩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며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찬미 받으소서', 1항)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찬미 받으소서', 2항)
(~ 에제3,27)
조욱현 신부님_정말 그 말씀은 신기하구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마귀를 굴복시키는 힘을 본다. 한마디 말씀으로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자, 군중은 놀라며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36절)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실제로 악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구원의 행위이다.
마귀는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34절)라고 고백한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그 권능 앞에 두려워 떨며 내뱉은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35절)라고 하시며 마귀를 내쫓으신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놀라운 점은, 마귀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된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순명과 사랑의 삶에서 드러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권능은 길고 복잡한 주문이나 의식이 아니라, 단순한 명령 속에 드러난다. 이는 곧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증거한다.”(Hom. in Matthaeum 27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귀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두려움 때문이지 사랑 때문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Enarrationes in Psalmos 50 참조)라고 설명한다. 성 이레네오는 마귀를 굴복시키는 예수님의 권능을 “새로운 권위의 가르침”이라 부르며, 율법 학자들과 다른 점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새 창조를 여는 힘”(Adversus Haereses III,19 참조)이라고 보았다. 교회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으로 가르친다. 교리서는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히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그분 안에서 도래했음을 드러내는 표징”(547항)이라 가르친다.
우리도 신앙인이면서 때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말씀을 듣고도 삶에서 그 힘을 체험하지 못하거나, 은총을 받고도 일상에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깨어 있는 신앙의 눈을 가지려면, 기도와 성사 생활 안에서 주님의 임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도 이웃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고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 우리의 말과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도 권위 있는 가르침이 될 것이다. 오늘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36절)라고 감탄했듯이, 우리도 매일 말씀 안에서 그분의 권능을 새롭게 경험해야 한다. 마귀도 주님을 알아보는데, 정작 우리 신앙인들이 그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늘 깨어서 말씀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권위 있는 증거가 되도록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거룩하신분
무더웠던 8월을 뒤로 하고 계절상 가을의 문턱인 9월에 들어서면서, 우리 한국 가톨릭 신앙인들은 뜻깊은 성월을 맞이합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고마운 이 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이 한 달, 굳건한 믿음과 망설임 없는 실천을 통하여 우리 모두 그분들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임을 드러낼 수 있는, 거룩한 한 달이 되도록 마음을 모아 살펴나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는 고향 나자렛에서, 오늘은 복음 전파의 주요 무대인 갈릴래아 호수 주변, 그 가운데서도 순례지로 유명한 가파르나움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십니다. 카파르나움은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마태 9,1)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의 주요 활동 무대였습니다. 비옥한 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요한 무역로의 교차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헤로데 필리포스와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땅의 경계 지역 길목으로서 국경을 지나는 많은 이방인에게 세금을 징수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지역이었기에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었으며, 그곳에 근무하던 백인대장의 청으로 예수님이 그 하인의 병을 치유해 주시면서 백인대장의 놀라운 믿음을 격찬하신 적도 있습니다(마태 8,5-13 참조). 지금은 폐허의 상태로 남아 있지만, 유다교 회당터를 볼 수 있고, 마을 한가운데 베드로의 집터 위에는 기념 성당이 세워져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처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회당에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회당장의 지명이 전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다교 전례에서 안식일에는 보통 두 개의 성경 본문이 봉독되었습니다. 하나는 ‘토라’ 곧 ‘오경’에서 택한 본문으로서 율법학자가 읽고서 해설했으며, 다른 하나는 ‘느비임’ 곧 ‘예언서’에서 취한 본문으로서 30세가 된 성인이면 ‘누구든지’ 읽고 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누구든지’는 필요에 따라 회당장의 지명 또는 부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은,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도 그러하셨지만, 유다교 전통에 따라 공적인 자리에 서서 말할 자격이 부여되던 나이 ‘30세’에 이르신 예수님이 지명을 받으셨고, 그래서 말씀하실 기회를 얻으십니다. 카파르나움 회당의 사람들은, 고향 나자렛과는 달리,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 권위가 결국 ‘마귀의 영’을 제압하기에 이릅니다.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예수님으로서는 이 사명 수행을 가로막으려는 마귀를 우선 제압하셔야 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미리 폭로해서, 그분의 사명 수행을 훼방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과 행적으로 당신의 제자들은 물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가르치려 했던 가르침 가운데 핵심은 당신의 신성을 가리키는 가장 오래된 표현인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임을 마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내와 사랑으로 가르쳐 제자들에게 꼭 확인하고 싶으셨던 신앙 고백으로서의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 마귀에게서 발설됩니다. 물론 이는 신앙 고백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여정을 방해하려는 의도에서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조용히 하여라” 하는 명령과 함께 마귀를 쫓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구원 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가시며, 이 사건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공고히 하는 사건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인 세상과 인류의 구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시면서,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하기 시작하시면서, 적대 세력인 마귀를 ‘멸망시키러 오신 분’임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오늘 하루, 자랑스러운 이 땅의 순교자들을 본받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며, 그분의 뜻을 왜곡하거나 가로막는 어떤 세력이나 유혹에도 굴함이 없이, 기도로 시작하여 실천으로 채우고 감사로 마감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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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26 |
행복은 선물이다. 신(神)이 주시는 선물이다. |
01:49 | 김중애 |
| 191625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9.02) |
01:47 | 김중애 |
| 191624 |
매일미사/2026년 9월 2일 수요일[(녹)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01:46 | 김중애 |
| 191623 |
[슬로우 묵상] 하느님 안에 뿌리내린 존재의 열매 _ 연중 제22주간 수요일을 준비하며 |
2026-09-01 | 서하 |
| 191622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2일 출처https://cafe.daum.net/b ... |
2026-09-01 | 박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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