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일 (목)
(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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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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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9-02 ㅣ No.191636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2주간 수요일>(9.2) -창조시기 2일차-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루카4,43ㄴ)

 

'땀의 찬가!'

 

오늘 복음(루카4,38-44)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병든 장모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말씀'과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을 떠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까지 찾아가서는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붙들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4,43)

 

이 땅에 있는 많은 성직자들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 대리자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예수님처럼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직자들은 그 일을 위해서 어느 한 곳에만 정주해 있지 않고,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계속 그렇게 이동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있지만, 기쁘게 보내드립니다.

 

본당 신자들은 본당 사목자를 예수님의 직무 대리자로 파견된 사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내 마음에 따라 본당 사목자를 바라보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벗어나려 하거나 내치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 본당 사목자들은 예수님을 사목의 기준으로 놓고, 예수님처럼 사목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오늘 독서(1코린3,1-9)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편과  아폴로 편으로 분열된 공동체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1코린3,3)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3,6.7ㄴ.9)

 

내 것을 앞세우고, 내 것을 드러내려고 할 때,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런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불평불만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 놓고 삽시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인간이 하느님 피조물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켜 지구의 본디 모습(integrity)에 손상을 입히고, 자연 삼림과 습지를 파괴하며, 지구의 물, 흙, 공기, 생명을 오염시키는 것은 모두 죄가 됩니다."('찬미 받으소서', 8항)

 

(~ 에제10,2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 “은총은 봉사를 위하여” 

 

오늘 복음은 시몬(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고 있다가 예수님의 가까이 오심으로 치유되는 장면을 전해 준다. “예수님께서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39절)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예수님은 단순한 의사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며, 치유는 단순히 개인의 안녕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사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며, 은총을 받는 이유는 더 큰 봉사를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말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베드로의 장모의 치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고쳐지고 나서, 즉시 봉사의 자리로 들어간다. 이는 치유가 곧 사명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IV, 57 참조) 교회와 신자는 단순히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성 베다 존자는 이렇게 말한다. “열병은 우리의 탐욕과 정욕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치유된 영혼은 곧바로 봉사에 나아가야 한다.”(Homiliae Evangelii, I, 17 요약) 우리도 죄의 열병에서 치유되면, 즉시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치유의 즉각성을 강조하면서, “그녀가 곧 일어나 시중들었다는 것은 치유가 완전하고 즉각적임을 보여 주며, 또한 은총은 게으름이 아니라 활동으로 이끈다.”(Hom. in Matthaeum, 27 요약)라고 말했다. 교리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병자를 돌보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동시에 자신의 봉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치유 활동에 참여한다.”(1506항)라고 가르친다. 즉, 치유와 봉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열병’은 있다. 죄의 열정, 집착, 자기중심적인 삶의 병…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신다. 중요한 것은, 치유의 목적이 나의 편안함이 아니라, 봉사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건강을 되찾았을 때, 그것은 주님께 봉사하라는 부르심이다. 더 나은 직위나 학식을 얻었을 때, 그것은 교만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도구이다. 죄에서 해방되었을 때, 그것은 이웃에게 자비를 나누라는 사명이다. 

 

베드로의 장모가 은총을 입은 즉시 봉사의 삶으로 나아갔듯이, 우리 또한 받은 은혜를 봉사의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 치유는 곧 사명으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열병을 고쳐 주시기를 청하여야겠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즉시, 이웃을 향해 봉사와 사랑으로 응답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도록 하자.

 

김건태 신부님_복음 선포자의 모습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하는 말씀으로 복음 전파의 길에 들어선 예수님은,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셨으며, 회당에서 나오셔서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를 포함해 그 고을의 모든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튿날 이른 새벽에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시며, 줄곧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십니다. 일자로 계산하면, 단 이틀 동안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쉼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주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모습을 눈여겨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활동적인 분주한 모습입니다. 활발히 움직이시는 모습은 어느 정도 현대인들의 분주한 일상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일의 내용이나 목적 또는 방법은 다를 수 있어도, 활동적인 모습만큼은 근접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뛰어야 하고, 이러저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부탁에 부응하기 위해 내외적으로 고심하며 애쓰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멈출 줄 아는 모습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시면서도, 예수님은 또 다른 중요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잠시 멈추십니다. 하나는 우정을 위한 멈춤이며, 다른 하나는 기도를 위한 멈춤입니다. 우정 차원에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을 방문하여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심에는 마을 사람들의 역할도 큽니다. 마을 사람들의 우정까지 내다볼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별도의 기도 시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십니다. “날이 새자,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하는 표현으로 보아, 수면 시간이나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당신의 말씀과 행적이 성부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늘 살피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해야 할 일을 내다보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항상 의식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하는 일정 발표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계획대로 다 이루셨다 하더라도, 쉼 없이 아직 남아 있는 일을 내다보신다는 점입니다.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구세주로서의 모습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 활동적인 모습, 멈출 줄 아는 지혜, 해야 할 일들을 늘 마음에 새기며 구원 사업을 펼치셨던 열정을 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본받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합니다. 혹시 그대로 따라 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을의 그 선한 사람들처럼 주님의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여유는 지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하루,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을 가슴에 새기는,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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