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양승국 신부님_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
|---|
|
지난 한 세기를 살아간 여성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여성의 이름을 적으라는 설문 조사 때마다 첫 자리는 언제나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1910~1997)이었습니다. 본인은 스스로를 일컬어 ‘하느님 손에 쥐어진 몽땅 연필’에 지나지 않는다며 극구 자신의 선행을 감추었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막사이상, 슈바이처상, 요한 23세 평화상,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업적을 높이 칭송했습니다. 1
997년 9월 5일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녀를 위해 인도 정부는 국장으로 타계를 애도했습니다. 가톨릭교회 역시 사후 5년이 지난 후에야 시복 절차를 추진하는 관례를 깨고 선종 6년만인 2003년 10월 19일에 그녀를 복녀품에 올렸습니다.
후에 ‘계시의 날’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될 1946년 9월 10일 데레사 수녀님은 피정을 위해 콜카타를 떠나 다르질링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또 하나의 부르심이자 ‘부르심 안에 부르심’이 될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이웃들 가운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웃들을 섬겨라!” 수도복 대신에 인도 전통 의상인 투박한 ‘사리’를 걸치고 간단한 의료지식만을 익힌 그녀는 무작정 콜카타의 빈민가로 들어가 가장 가난한 이들의 ‘종’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에 걸친 사도직의 모토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목마름을 채워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목숨 다하는 순간까지 그녀는 임종자의 집, 나환자 치료센터, 무료급식소, 결핵요양소, 에이즈 치료센터와 같이 너무 힘들어 기존 수도회들이 꺼리던 사도직,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사랑의 사도직을 계속 펼쳐나갔습니다.
만인이 칭송하고 흠모하는 위대한 인물이었던 데레사 수녀님이었습니다. 영성생활의 정점을 찍은 살아있는 성녀로 존경받던 그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평생토록 따라다니던 무거운 십자가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생애 내내 짙게 드리웠던 영적 어둠이었습니다.
그녀의 시복 청원 작업을 주도했던 사람은 사랑의 선교회 소속 브라이언 콜로디 척 신부입니다. 그는 그녀가 살아생전 영적 지도자들과 주고받았던 서한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는데, 제목이 ‘나의 빛이 되어라’(Come be my light)입니다. 그녀는 틈만 나면 자신이 남긴 모든 기록을 태워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사려 깊은 영적지도자들은 언젠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필요한 자료라 여기고 많은 편지들을 보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의 서한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저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편지 속에는 셀 수도 없이 자주 자신이 겪은 하느님 부재 체험, 영혼의 어둔 밤에 대한 깊은 탄식과 하소연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런 분이 시복시성에 합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더 큰 놀라움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계속되는 영적 메마름 속에서도 그녀는 지치지 않고 하느님을 갈구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부재 체험으로 인해 힘겨울 때면 어김없이 영적 지도자들에게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 고통스런 내적 경험들이 위대한 사명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콜카타에서 봉사를 시작한 1947년 이래 1997년 돌아가실 때 까지 약 50년간에 걸쳐, 다시 말해서 전 생애에 걸쳐 하느님 부재 체험, 영혼의 어둔 밤을 지속적으로 겪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위대한 사업이 시작될 무렵(1946~1947년) 그녀의 영적 생활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 순수한 사랑, 강한 믿음, 열렬한 기도로 충만했습니다. 더 나아가 환시, 탈혼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달콤함은 잠시뿐이었습니다. 그분과 나누었던 사랑의 밀어, 그분으로부터 오는 한없는 위로는 찰나였습니다. 길고도 메마른 영적 사막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영적생활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강조점은 이것입니다. 하느님 부재 체험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그녀는 더욱 더 예수님께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고 특히 예수님의 수난 속에서 그분과 하나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가난한 이웃들인 콜카타의 빈민가 사람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했습니다.
“빈민가를 걸어가거나 어둡고 누추한 곳에 들어설 때 주님은 항상 그곳에 계십니다.” 그 결과 연옥체험과도 같은 혹독한 영적 시련 속에서도 빛나는 미소로 그 위대한 사랑의 사도직을 계속해나간 것입니다. 그녀의 환한 미소는 그녀 내면의 심연의 고통을 감추었고 내면의 골고타를 감추었습니다. 언젠가 그녀는 영적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제가 성녀가 된다면 분명 ‘어둠의 성녀’일 것입니다. 언제나 어둠에 빛을 밝히러 세상에 내려가 있을 테니 천국에는 없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짙은 영적 어둠과 심연의 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녀 인생의 결론은 한결같았습니다.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1688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09:26 | 최원석 |
| 191687 |
주님이며 스승이신 예수 |
09:17 | 유경록 |
| 191686 |
양승국 신부님_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
09:08 | 최원석 |
| 191685 |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09:08 | 최원석 |
| 191684 |
이영근 신부님_“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
09:07 | 최원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