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7일 (월)
(녹)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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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플로렌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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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욱 [nonomal] 쪽지 캡슐

2026-09-06 ㅣ No.191713

2026.9.6 주일미사 강론 <김동현 플로렌시오 신부님>

 

오늘  에제키엘의 예언서에서 담고 있는  첫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지방의 파수꾼으로 삼았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죠. 파수꾼은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추수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추수는 거둬들이는 사람인데 파수꾼은 그 반대로 무언가를 지키고 또 성장하도록 잘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파수꾼은 특히 불길한 징조를 미리 보고 알려주는 역할을 해주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전쟁과 재앙의 조짐이 보이면 나팔을 불어서 백성에게 신호를 주어야 합니다. 백성에게 위험이 닥친 것을 보고도 파수꾼이 경고해 주지 않아 누군가가 죽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본인 탓도 있겠지만 파수꾼 역시도 자신의 소명을 게을리해 그 사람을 죽게 만든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 그 백성이 다가오는 재앙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 즉 파수꾼이 제 역할을 다해서 제때의 신호를 주었더라면 조심하여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요약하면 오늘 주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중요한 책무를 맡기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들이 무얼 지켜야 하기에 이렇게 깨어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독서의 내용을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은 공동체의 선과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공동체의 누구도 악에 빠져서 악인이 되면 안 되지요. 그건 그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어디선가의 일어나는 악이 방관되어서도 안 됨을 오늘 알려주고 계십니다. 내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하느님을 찾지 말고 거시적 관점에서 전체를 보라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그분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같은 의도의 말씀을 복음에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여기서도 역시 서로가 서로를 돌볼 것을 당부하십니다. 형제의 잘못을 비단 그의 책임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나의 일처럼 여길 줄 알라는 얘기시겠죠.지금 벌어지는 모든 것들은 홀로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그 일들 안에서 책임의 정도는 각자 다를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개개인이 모여서 현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발생하는 공동체 일은 공동체 구성원이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다면 그것은 주님 말씀으로부터 받은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가 되겠지요. 오늘 말씀은 그런 것들을 경계하도록 이끄십니다. 

 

현대 사회는 남을 판단하는 것에는 익숙한데 끌고 돌보고 타이르는 것에는 약합니다. 좋게 얘기하면 판단력은 빠릿한데 포용력은 약한 거죠.  이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어찌 보면 분석과 판단은 적자 생존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변화를 강조하십니다. 판단하는 것보다 이해하고 다가가는게 먼저라는 얘기입니다.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것도 큰 용기이죠. 그것도 오늘 복음에서처럼 두 번 세 번 이해하기보다 먼저 타이르게 하는 것 굉장한 용기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께는 더 적합합니다.

 

하느님의 역사도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받아주신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사실은 개개인은 공동체를 보호하는 존재인 동시에 보호받는 존재라는 겁니다. 즉 나도 판단하기 전에 남을 받아들이기위해 남을 타이르려 노력할 수 있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잠시 떨어져 유혹에 시달릴 수 있음을 알고 다른 이의 조언에 열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와 아래의 존재가 아닌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주님 앞에 사람임을 자각할 때 공동체는 보다 나은 방법과 방향으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주님의 바람을 따라 사명감을 지닌 두세 사람의 공동체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구원의 방주인 교회 안에서 함께 나아가는 우리  본당 공동체 역시도 안녕과 주님의 보호 속 인도하는 방향으로 조금 더 잘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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