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0일 (목)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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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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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4:55 ㅣ No.191790

예전에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어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울 것이 있습니다.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에게서는 지식을 배울 수 있고,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서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부족한 점만 보려고 하면 누구도 스승이 될 수 없지만,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는 것,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휴가 중에 신부님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 신부님은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요즘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체중을 줄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의 도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운동을 함께 하고, 올바른 식사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방을 중단한 뒤에 다시 체중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약은 좋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생활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강론을 듣고, 교리를 배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신앙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들은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용서를 배웠다면 용서해야 하고, 나눔을 배웠다면 나누어야 하며, 사랑을 들었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구하여라.” 이 말씀을 알고 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걱정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의를 선택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마음속의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행동, 선택과 습관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한 신부님에게서는 넉넉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신부님을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따뜻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맞서서 따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흉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먼저 인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그러자 나중에는 그 사람이 스스로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하며 화해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름답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비난하고 오해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신부님들은 또 저에게서 긍정적인 모습을 배운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 역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서로의 허물보다는 좋은 점을 바라보고 배우려 할 때 우리의 만남은 은총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스승이 되고, 서로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유인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와 아픔을 헤아렸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리를 버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편안함과 고집을 내려놓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려 했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사목 표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하신 말씀에서 가져온 표어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온전히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한삶이었습니다.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한 사람과 죄인,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신학교 도서관 입구에도 모든 이의 모든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운 것을 가지고 모든 이를 섬기기 위해서라는 의미였습니다. 사제가 되고,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주는 것입니다.

 

다음에 신부님들을 만났을 때, 바오로 사도처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려고 노력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품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인정받았는가보다, 얼마나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큰 허물은 잘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판단하고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는 살피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의 부족한 점보다 좋은 점을 먼저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서도 배우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배우며,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고, 내가 배운 좋은 것을 다시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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