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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 조욱현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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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원수사랑
시나이산에서 체결된 옛 계약의 중개자 모세가 사회관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중심으로 법 규정들을 열거해 나갔다면, 예수님은 이 규정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들을 지적하고 보완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모세는 악행을 열거하고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성문화하는 데 만족했다면, 예수님은 이 악행을 온전한 사랑으로 극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이 선포하고 완성하러 오신 하느님의 나라는 더욱 완벽한 신앙 자세를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를 향해 마음이 온전히 열려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좀 더 인간다운 사회, 서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살맛 나는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사회가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여전히 미움이나 불신 상태에 머물러 있음에도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사회 구조라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서툰 지혜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는 인간의 지혜, 근시안적이거나 때로 왜곡될 수 있는 인간의 지혜를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자세를 온전히 새롭게 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한 정의의 차원에서 제정된 법규들, 복수(復讐)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목적으로 제정된 동태복수법에 기초한 법규들과 비교해 볼 때, 보다 근원적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여라’와 같은 근원적인 가르침이 인간사회의 가장 자연스러운 규범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비폭력을 역설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증오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사랑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여라’하는 주님의 위대한 가르침 앞에서, 이 하나는 분명해 보입니다. 원수가 아닌 사람 사랑은 당연하다는 대전제입니다! 원수까지 사랑의 대상에 포함하기 위해서는, 원수가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형제 사랑, 이웃 사랑 실천에 모자람이 없을 때, 원수 사랑도 가능함을, 원수도 사랑할 수 있음을 역설하시는 듯합니다. 이웃의 범위를 넓혀 원수까지도 담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하루,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는 일이 없이 사랑 실천으로 주님을 증언하며,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더욱 넓고 깊은 사랑으로 원수까지 이웃으로 담겠다는 의지로 이 하루를 꾸며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원수를 사랑하여라.
오늘 복음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자 가장 도전적인 계명인 “원수를 사랑하여라.”(27절)라는 말씀을 들려준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말씀을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십자가 위의 용서를 통해 친히 실천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주님께서는 단순히 윤리적 요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닮은 삶으로의 초대임을 밝히신다.
예수님은 네 가지 행동을 통해 원수 사랑의 길을 제시하신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어라.”(27절) 미움에 대해 선행으로 응답하라는 것이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여라.”(28절) 말의 폭력을 사랑의 언어로 바꾸라는 것이다.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28절) 보복 대신 하느님께 그를 맡기라는 것이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어라.”(29절) 정의를 넘어서는 자비의 절정을 가르치신다. 이 말씀은 십자가의 삶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며, 부활하신 주님의 제자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길을 가리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용서와 자비는 기도를 하늘로 올려보내는 두 날개와 같다.”라고 하였다. 즉, 용서 없는 기도는 하늘에 오를 수 없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천사를 닮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는 것이다. 이는 인간적 사랑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삶을 드러낸다.” 성 스테파노의 순교는 그 모범을 보여 준다. 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소서.”(사도 7,60)라고 기도하였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용서를 온전히 닮은 행위다. 교리서는 “원수 사랑은 십자가의 은총에서 흘러나오는 것”(2844항 참조)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별 짓는 탁월한 표지라고 한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 각자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미움과 원망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할 수 있는가? 나는 받은 것을 갚아주려는 마음보다는, 주님의 자비를 닮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나누라고 초대한다.(37-38절) 이 네 가지는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는 가능하다. 원수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 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께 청하자. “주님, 제 마음에서 미움과 원망을 없애주시고,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주님 사랑의 증인이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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