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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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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열두사도의 파견
오늘 예수님은 그동안 양성해온 열두 제자를 일차적으로 시험 파견하시며, 파견 지침을 내리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십니다.’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다음, 예수님은 이들을 늘 곁에 두시어, 그들이 당신의 말씀을 직접 두 귀로 듣게 하고, 당신의 행적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하십니다. 바로 이들이 당신의 뒤를 이어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본 것을 전하며, 지상 교회를 맡아 구원사업을 이어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질병을 마귀의 장난 또는 간섭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았기에,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과 질병을 고치는 권한은 동일한 권한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입니다. 마귀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존재, 그분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도록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이 권한을 주셨다 함은, 성자께서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고 이 나라를 선포해야 할 교회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자격을 말합니다. 이어서,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하고 이르십니다. 흔히 길을 떠날 때는, 여행의 결과는 준비과정에 달려 있다 할 정도로, 준비에 최선을 다하게 마련인데, 주님은 오히려 철저한 비움과 가난을 강조하십니다. ‘여행 보따리’도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여행 보따리는 자기 고유의 세계를 고집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내가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의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도록 유혹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파견된 ‘나’에게는 파견하신 분의 가르침과 정신이 담겨 있을 뿐이니,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선교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내다보시며,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 하는 지침을 덧붙이십니다. 경고 또는 단절과 결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해 보여도, 선교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할 사도들에게 이 말씀은 또한 미련과 아쉬움 털어버리고 용기 내어 다시 시작하라는, 다시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자리합니다. 인간적으로 “너희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면”, 허망하거나 야속할 수 있어도, 그렇다고 선교의 길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가톨릭교회의 존재 목적, 이 교회에 몸담고 있는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운 교회에 우리를 불러 주시고, 언제 어디서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도록 우리를 초대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내가 가지고 있거나 쌓아 놓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담아주신 말씀과 정신을 벗 삼아 만나는 모든 이에게 신앙의 기쁨을 전하는, 그것도 용기 내어 힘차게 전하는, 활기 넘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자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권능과 권위를 나누어 주신다. 이는 단순한 임무 위임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에 참여하게 하시는 은총이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고 악령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복음의 임무를 맡기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지지 마라.”(3절)라고 하신다. 이는 단순한 가난의 이상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의존은 하느님의 말씀을 흐리게 만들고, 마음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하며 제자의 삶의 본질을 해석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복음 선포가 재물이나 힘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가난은 곧 복음의 순수성을 증명한다.”(Hom. in Matth. 32,3 요약) 성 예로니모는 사도들이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을 갖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Comment. in Matth. 10,9 요약)라고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나아가, 제자들의 가난이 단순한 무소유가 아니라, 사랑의 풍요로움이라고 가르친다. “가난하게 보낸 그들은 실상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하느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Sermon 101,2 요약)
교회도 복음 선포 사명의 근본정신을 이와 같이 해석한다. “사제 교령”은 이렇게 가르친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가난한 삶을 닮아야 하며, 세속적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오직 복음과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17항 요약) 교리서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께서 지시하신 가난과 단순함을 따라야 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능력이 인간적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서 비롯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복음은 사람을 매혹하는 웅변이나 많은 물질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순수한 증거와 삶의 일치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각자를 당신의 제자로 파견하신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다. 우리의 빈손은 하느님의 은총을 담는 그릇이 되며, 우리의 가난은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표징이 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물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과 그분의 성령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이라는 예언자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기를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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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3 | 이경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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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3 | Mark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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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3 | Mark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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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2026-09-23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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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길을 떠날 때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 ... |
2026-09-23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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