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3일 (수)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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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세 번째 묵상 - 사랑의 매가 주는 마지막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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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Choi [mychoi1960] 쪽지 캡슐

21:18 ㅣ No.192073

These reflections came from seeing how religion, and sometimes even God’s name, can be used for personal interests or gain.


What concerns me even more is when people within the Church—laypeople, religious, or clergy—knowingly or unknowingly support, justify, or remain silent about such behavior instead of discerning what is truly right before God.


It led me to reflect on humility, correction, repentance, and what genuine love should look like in faith.



강만연 형제님, 반갑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특별히 한 사람이나 한 사건을 이야기하려고 시작한 묵상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종교나 하느님의 이름이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이용되거나, 신앙이라는 이름 뒤에서 개인적인 목적이나 이익이 앞서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그런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동조하거나, 혹은 알고도 외면하는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신앙의 이름으로 그러한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침묵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함께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평신도이든 수도자이든 성직자이든, 결국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는 자세는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잘못된 것을 무조건 감싸주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때로는 잘못을 깨닫도록 단호하게 멈춰 세우는 것도 사랑일까’라는 생각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매와 폭력은 다르다’는 묵상에서 시작하여, 그 매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벌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묵상은 누군가를 판단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신앙의 이름을 사용하는 모든 이들이 과연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저 자신부터 돌아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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