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9일 (화)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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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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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nelia2] 쪽지 캡슐

2026-09-28 ㅣ No.192170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루카 9,46-50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을까요? 우리와 똑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겪는 희노애락을 다 겪으심으로써, 우리의 입장과 처지를 더 깊이 이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왜 죄를 짓게 되는지, 죄를 짓고 난 다음에는 어떤 마음이 드는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등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셨기에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셨고, 부족하고 약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해, 모진 수난과 모욕 그리고 죽음까지도 기쁘게 받아내실 수 있었습니다. 참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겸손’ 덕분에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으신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당신의 뒤를 따라야 할 제자들은 겸손의 덕을 갖추는 건 고사하고 자기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의 문제로 논쟁이나 벌이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를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기들이 받은 사랑과 자비의 은총을 이웃 형제들에게 더 잘 베풀 수 있을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으면서,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부귀영화를 놓고 아귀다툼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그런 어리석음을 바로잡으시고자 어린이 하나를 그들 앞에 세우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유다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른이 돌봐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무능하고 약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그분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어린이를 내 안에 받아들이라는 건 사회에서 소외된 작고 약한 이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부족하고 약한 자신들을, 그 많은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당신 제자로 받아주신 것처럼, 상대방의 부족함과 약함을 채워주고 허물을 덮어주며 잘못을 용서해주라는, 다시 말해 그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안에 받아들여 사랑으로 품으라는 뜻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참으로 큰 사람은 남들을 밟고 올라가 높은 위치에 서려 하는 교만한 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이해와 존중으로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품이 넓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웃을 바라보면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경쟁자’로 여겨 시기 질투하거나 배척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까봐 걱정되어 전전긍긍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나와 같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동료이자 동반자로 받아들여 함께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가 나와 같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큰 힘과 용기를 얻어 참으로 기뻐하지요. 그렇게 그와 내가 사랑과 신뢰로 일치되면 주님과도 ‘한 편’이 되어 그분께서 누리시는 참된 행복과 평화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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