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일 (금)
(백) 수호천사 기념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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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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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10-01 ㅣ No.192226

김건태 신부님_선교 지침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열두 사도’ 이외에 ‘일흔두 명의 다른 제자들’을 시험 삼아 파견하시며 분부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루카 복음 저자만이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대상으로 하는 예수님의 ‘선교 지침’을 전하고 있지만, 이 지침은 9,2-5에서 열두 사도를 대상으로 한 지침보다 더 발전된 것으로서, 마태오 복음서에서 열두 사도에게 건네신 지침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마태 10,5-15).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수행할 선교 사명이 장차 이교인들을 대상으로 펼쳐져야 할 선교의 기초가 됩니다.

일흔두 제자의 이러한 사명을 전하는 루카는 이중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복음 전파가 열두 사도에게 국한된 사명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팔레스티나 지역 선교가 이교 지역 선교의 예형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의도는 분명 이교인 선교에 앞장섰던 루카 자신의 복음 선포 사명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길에 들어선 ‘파견된 이들’의 첫 준비 작업은 ‘기도’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복음 선포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도가 앞서야 한다는 대원칙 천명입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청한다는 것은, 청할 만큼 나는 부족한 존재이며, 이 청을 들어주실 만큼 능력이 있는 분에 대한 고백, 곧 신앙고백이 될 것입니다. 다른 것에는 부족함이 있어도, 기도만큼은 철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 기도와 함께 ‘파견된 이들’이 늘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할 덕목은 ’겸손‘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난 이래,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정성껏 주님의 말씀을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충해 방지를 위해 애쓰고 등등 일해오면서, 그래도 추수의 기쁨만큼은 주님께 드려야지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저 ‘추수할 일꾼’을 필요로 하신답니다. 땀 흘려 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추수의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터득합니다. 주님이 다 차려놓으신 잔칫상에서, 기쁨만 누리면 된다는 의식의 전환입니다. 그러니 겸손의 몸짓, 감사의 마음으로 화답할 일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형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겸손한 모습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며, 그것이 바로 ‘파견된 이들’의 사명입니다. 평화, ‘샬롬’ 하면, 하나의 인사말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평화가 되돌아온다는 언급으로 보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게 분명합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지 않음에도, 흔히 평화라는 단어로 행복을 표현하기 일쑤였습니다. 성경에서 평화는 이처럼 남을 행복하게, 남을 편하게 해주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은 ‘그 평화가 되돌아온다.’ 하는 말씀으로, 행복을 전하면서 우리 자신 행복해질 것이며, 남을 편하게 해주면서 우리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바로 거기에 구원이 있고, 바로 거기에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기도에 더욱 정성을 다하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가운데,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0,1-12: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외에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신다. 이는 복음 선포의 사명이 열두 사도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신자에게 확장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보내신 것은, 사랑이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음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사랑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Homiliae in Evangelia 재구성) 

 

주님은 제자들을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낸다.”(3절)라고 하신다. 양은 무기력하고 약한 존재지만, 목자가 곁에 있을 때는 안전하다. 제자가 세상에서 안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늘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힘은 인간적인 지혜나 무기가 아니라, 복음 자체의 힘과 주님의 동행이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돈주머니나 신발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가난을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자가 하느님 섭리에 전적으로 의탁해야 함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복음의 일꾼은 재물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파견하신 분께 의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전하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임이 드러난다.”(In Matthaeum homiliae 요약)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만나는 이들에게 먼저 “평화를 빕니다.”(5절)라고 말하라고 하신다. 여기서 ‘평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의미한다. 이 평화는 거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거절당하더라도, 평화는 선포자의 마음에 되돌아온다. 즉, 복음은 전할 때 먼저 전하는 이의 영혼을 살찌우는 은총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12절)이라고 하신다. 이는 제자들이 복수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을 거부하는 선택 자체가 이미 그들에게 심판이 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 나라는 강요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생명의 은총이 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복음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조건 없이,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는 내 일상에서 파견된 제자처럼 작은 자리에서나마 복음을 전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 주님의 파견을 받은 이들이다. 파견된 제자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의탁하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우리가 전하는 작은 말 한마디, 작은 선행 하나가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가 되어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전할 수 있다. 오늘 미사 안에서 우리가 모두 파견된 제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단순한 신뢰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할 은총을 청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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