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6일 (화)
(녹)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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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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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41 ㅣ No.192320

김건태 신부님_기도와 일 

 

복음 저자 루카만이 전하는 오늘 이야기에서, 우리는 행동이냐 아니면 들음이냐, 또는 일이냐 아니면 기도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 두 주제를 아우르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와 마리아를 대립시키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으십니다.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시나, 그렇다고 마르타의 몸짓을 단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둘 다 예수님에게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가 동일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마르타는 활동적이어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데에서도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손님 대접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매여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과도한 염려는 주님을 모시기에 적합한 자세가 아닙니다. 주님 모심에 우선적이어야 하는 것은, 푸짐한 성찬을 나누는 일보다는, 먼저 주님을 중심으로 함께 모이는 일, 서로 만나는 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끝없이 지속되는 들음의 시간! 어떤 내용이길래, 언니 마르타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분 말씀 듣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일까? 복음 말씀은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씀 듣기에 지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는 마르타는, 들음 또는 기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위로 취급하는 사람들처럼, 조바심을 감추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당신을 식사에 초대하고 식사 준비를 위해서 바삐 움직이는 마르타를 보시고 존경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조바심의 도가 지나치다는 점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있구나.” 잠시라도 함께 앉아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드러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현존을 가슴 깊이 체험하는 행위 또한 사랑의 위대한 표현임을 인식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행동과 들음, 일과 기도,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문맥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일에 치우치는 모습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들음과 기도에는 아무리 치우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음을 은연중에 강조하시는 듯합니다. 우선은 당신의 뒤를 이어 지상교회를 책임져야 할 사도들이 그대로 따라야 할 대목이며, 다음으로 일보다는 기도에 늘 부족함이 많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지점입니다.

 

 

오늘 하루도, 들음과 기도 안에서 주님을 뵙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핀 다음, 구체적 행동을 통하여 그 뜻을 펼쳐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마르타와 마리아 

 

오늘 복음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두 자매는 모두 주님을 사랑했다. 마르타는 봉사와 환대의 모습으로, 마리아는 경청과 관상의 모습으로 주님을 맞고 있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마르타는 봉사의 본보기를, 마리아는 관상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관상은 봉사의 뿌리이며, 봉사는 관상을 통해 힘을 얻는다.”(De Officiis, II,11,88 요약)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태도를 칭찬하시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42절)라고 하신 것은, 봉사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일이 모든 봉사의 근원임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않고는 참된 봉사도 사랑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타는 성경 곳곳에서 주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보여 준다.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라고 고백했던 이는 마르타였다. 마르타는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40절)라고 한다. 그녀의 사랑과 믿음은 진실했지만, 봉사의 분주함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잃고 짜증을 낸 것이다. 주님은 그 순간, 마르타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사랑으로 초대하신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활동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이 말씀의 경청과 기도의 뿌리 위에 놓이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지치고 불평하게 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이며, 신앙생활의 숨결이다.”(2565항 참조) 마리아가 보여 준 관상의 태도는 모든 신앙인의 기본자세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나는 말씀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혹시 봉사와 활동에 몰두하느라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멀어진 것은 아닌가? 

 

우리는 마르타처럼 봉사하면서도,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균형 잡힌 제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에서 생명과 힘을 얻을 때, 우리의 봉사는 불평이 아니라, 참된 기쁨과 열매로 이어질 것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42절)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초대이다. 오늘 하루, 우리도 잠시 분주함을 멈추고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때 우리의 봉사도 더욱더 복음적이고 열매 맺는 봉사가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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