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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가해, 군인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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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가해, 군인주일] 마태 22,1-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건 자기가 살면서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 그 당연했던 일상이 멈추면 불평 불만을 늘어놓거나 절망에 빠지게 되지요. 반면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건 일상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하느님께서 베푸신 특별한 ‘선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이들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나눌 줄 알기에 기쁨은 더 크게 누리고 슬픔과 괴로움은 더 무난하게 이겨내게 되지요.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을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으로 여기며 매 순간 그분 뜻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속 비유에서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초대받은 자리가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 자리인지, 그런 자리에 자신을 불러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임금은 그들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겼기에 아무나 갈 수 없는 귀한 자리에 특별히 초대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임금이 그저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기들을 불렀을 뿐이라고 오해했지요. 그래서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초대의 메시지를 전하러 온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서 ‘못가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 선택으로 ‘안가는’ 것임을 분명히 드러낸 겁니다. 그건 임금이 베푼 호의에 대한 선 넘는 ‘무례’이자, 그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폭력’이었지요. 이에 분노한 임금은 그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 ‘천국’에 들어갈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버렸으니 멸망의 수렁에 빠지는 게 당연한 수순입니다.
기껏 초대한 하객들이 그런 무례한 짓을 저질렀으니 잔치를 준비한 임금 입장에서는 상심이 컸을 것입니다. 이참에 힘들고 부담스러운 손님접대는 생략하고 가족들끼리 조용히 식을 올리는 ‘스몰웨딩’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요. 하지만 비유 속 임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잔치의 기쁨은 함께 나누는데에 그 본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잔치’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이 당신께서 내미시는 구원의 손길을 못알아보거나, 혹은 알아보고도 거부할 수 있는 부족하고 약한 존재임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구원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조건을 더 낮춰주십니다. 당신께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도, 당신 뜻을 철저하게 따르며 충실하게 살아온 ‘선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십니다. 그러니 그런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이제부터라도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준비를 갖춰가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 준비가 바로 ‘혼인예복’이라고 하십니다. 비유 속 임금이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을 둘러보며 인사하다가 혼인예복을 갖춰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고 쫓아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임금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아무나’ 불러오라고 했을 땐, 잔치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줄 생각이 아니었던 걸까요?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 하객이 갖춰야 할 중요한 미덕은 잔치의 주인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음’이 아닐런지요? 비유 속 잔치가 여느 평범한 혼인잔치였다면 그랬겠지만, 그 잔치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믿고 따르는 교회 공동체 전체를 ‘신부’로 맞이하여 구원으로 인도하는 특별한 잔치입니다. 즉 잔치에 참여한 이들은 그저 남의 기쁨을 축하만 해주는 ‘하객’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기쁨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신부가 ‘웨딩 드레스’를 갖춰입듯, 혼인예복이 ‘필수’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의 잔치 주인공으로써 갖춰입어야 할 혼인예복은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마음으로 하는 ‘회개’만을 가리키는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구원의 잔치 자리를 가득 채우시려는 모습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 형제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지만, ‘모두가’ 그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기쁘게 응답하는 사람만이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 때에, 제대로 응답하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혼인예복’은 그 때가 닥쳤을 때 갑자기 갖춰입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깨어있는 자세로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성찰해야겠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실행해야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오면 이것저것 재고 따지느라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바로 꽉 붙잡아야겠습니다.
* 함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2413 |
[연중 제28주일 가해, 군인주일] |
13:26 | 박영희 |
| 192412 |
대구대교구 나기정 다니엘신부님의 이주일(연중 28)의 복음묵상 입니다. |
11:53 | 오완수 |
| 192411 |
10.11.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 한상우 신부님 |
09:52 | 강칠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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