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
|
김건태 신부님_불행선언 셋
오늘 예수님은 어제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스스로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고백한 율법 교사들을 향하여 불행 선언을 이어 가십니다. 오늘의 첫 번째 불행 선언에서 무덤이 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어제의 불행 선언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조상들의 잘못으로 처형된 위인들, 특히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여 속죄의 뜻을 피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참 예언자들 모두 갖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박해한 사람들은 자신을 율법에 성실한 사람, 곧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던 사람들이었으며,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조상들의 이 악행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내다보시며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이르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예언자 가운데 예언자이시며 의인 가운데 의인이신 당신의 죽음은 물론, 당신이 파견하실 사도들의 운명을 예고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보시기에,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입니다.” 조상들의 잘못에 대한 속죄의 뜻을 밝히기 위해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한다고 믿고 있던 그들이 이제 ‘자신들의 무덤’을 걱정할 때가 된 것입니다.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회개를 멀리하여 무죄한 이들의 피를 맛보는데 도취해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개탄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버리는” 작태를 불행 선언의 대상으로 거론하십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유다교 지도자들에게 율법 자체는 그렇게 중요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세부 율법을 양산해 내기에 이른 율법 해석의 다양성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는’ 결과, 다시 말해서 (루카에게 ‘지식’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의미하기에) ‘하느님 나라 입성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기에, 불행 선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엊그제부터 이어온 불행 선언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내일 복음 말씀이 적시하고 있듯이, ‘위선자’로 고발됩니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는 대로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로 비난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질책은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는 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위선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언행(言行)과 지행(知行)과 신행(信行)이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한층 높이는 복된 하루,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말과 앎과 믿음이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_복음: 루카 11,47-54: “모든 예언자가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향하여 가장 무거운 경고를 하신다. 그들의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그 후손들은 겉으로는 그 예언자들을 기리는 무덤을 세우면서도, 정작 그보다 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을 지적하신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 곧 생명의 주관자를 죽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 스테파노가 순교하기 직전에 한 말씀이 떠오른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사도 7,52)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50절)을 언급하시며, 죄의 누적성과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 주신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의인들의 피는 땅에 흘려지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기억된다. 그 피가 하늘에 올라가 심판을 부른다.”(Homiliae in Leviticum, 9 요약) 이 말씀은 단순히 과거의 유다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예언자의 목소리, 곧 진리를 말하는 이들을 묵살하거나 배척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또 교회 안에서조차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이들을 불편해하고, 침묵시키려는 모습이 있다.
또한, 주님은 율법 교사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다.”(52절) 율법 교사들은 ‘율법의 열쇠’, 곧 하느님께 나아가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되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해석과 권위를 앞세워 사람들을 막았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두고 이렇게 경고한다. “율법을 아는 자가 사랑을 모른다면, 그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잠그는 자이다.”(Enarrationes in Psalmos, 36 요약)
우리도 혹시 하느님께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내 신앙의 태도가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가, 아니면 무겁게 짓누르고 막고 있는가? 내가 지닌 신앙의 ‘지식’이 생명을 열어 주는 열쇠인가, 아니면 문을 가로막는 자물쇠인가?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라, 회개의 초대이다. 우리가 말씀 앞에 겸손해지고,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며, 무엇보다도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열린 문이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는 은총 안에 살게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2472 |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
2026-10-15 | 조재형 |
| 3065 |
공산주의와 텔레미사, 그리고 성모님의 선물 |
2026-10-15 | 박소영 |
| 192471 |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 |
2026-10-15 | 박영희 |
| 192470 |
10월 15일 / 카톡 신부 |
2026-10-15 | 강칠등 |
| 192469 |
10.15.목 / 한상우 신부님 |
2026-10-15 | 강칠등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