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3일 (금)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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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징조?? 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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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49 ㅣ No.192610

신앙 생활하면서 참 어려운 것이 있다면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특히 어려운 것은 영적인 성화의 여정과 그 과정 속에서 오는 고립감입니다. 신부님들의 영적인 여정을 들여다 봅니다. 성덕이라고 해도 발은 땅을 딛고 있기에 다양한 존재들이 영적인 여정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힘니다. 그렇다고 외로우시지요? 물어보는 것은 더욱 금기 사항입니다. 그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여러가지 이십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과 대화하는데 참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도 인간인데 라는 마음으로 다가선다면 더욱 위험합니다. 인간이고 아픈것도 있고 외로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와 나는 같아..라는 마음으로 성직자들에게 대화를 하고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더욱 사태를 힘들게 합니다. 

 

알고 모르고에 따라서 무지 혹은 어두움 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아는 특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타인을 판단하라고 주신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은 더욱 수행하시고 고행하십니다. 아는 것을 성덕으로 승화 시키기 위해서요. 그러나 일반 신자들이 아는 것? 정확히 주님의 뜻을 안다? 안다는 결과는 사랑으로 이어져야 정확히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덕이 쌓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안다고 말할수 없는 것이고 안다고 해도 입으로 말 할 상황이 아닙니다. 

 

어설프게 알면서 안다고 해서 형제간에 이웃간에 관계에서 평가자의 위치로 간다면 더욱 혼란 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막의 교부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아는 것을 제대로 알고 안다고 해도 입으로 표현하는데 조심 스러워 하는 것을 그들 안에서 보게됩니다. 그들이 사막으로 들어간 것은 자아 극기와 훈련이 목적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늘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자아를 들여다 보는 작업에 집중하였습니다. 활동을 한다고 해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 표현했습니다.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상이 필요한 것이고 더욱 기도 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방종입니다. 주님이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징조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그리 답답해 하셨을까?영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고 자아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징조입니다. 그것을 볼수 없으면서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안다고 돌아다니니 주변은 피와 눈물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늘의 징조를 보고 아는 것을 실행해 옮기는 것이 최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하늘의 징조를 더 살피고 기도로서 나의 갈길을 청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면 결국은 방종으로 넘어가는 것이니 더욱 나를 돌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화의 여정은 멀고 험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고 있으면 필히 가야하니 매일 매일 심기 일전해서 하느님 찬미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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