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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속임수 ― 착한 사람들도 악한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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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2026-10-26 ㅣ No.3086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고 죄를 정당화할수록, 죄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고 마침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 분노하며 그 악을 응징하려 할 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폭력과 증오에 빠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막으려다가 자신도 죄를 짓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착한 사람들도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112. 정화의 때,9-11)

"마귀가 오늘날 만큼 너희를 감쪽같이 속여넘기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마귀는 교만으로 유혹하여 너희로 하여금 도덕적 혼란을 변명하고 정당화하게 한다. 그리고 죄를 지은 후에도 참회를 하지 못하도록 너희 양심의 소리를 말끔히 지워버린다. 참회야말로 너희를 회개로 이끄는 성령의 참 선물인데 말이다! 그래서 수년 동안 고해 성사를 받지 않은 내 불쌍한 아들들의 수가 지금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죄 속에서 썩어간다. 불결,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교만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384. 엄청난 배교,3)

"내 원수 '사탄'은 속임수와 교활한 유혹으로, 진리에 대한 새롭고도 가장 현대화된 해석이라는 허울을 쓴 오류를 곳곳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또한 수많은 이들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죄를 택하여 죄 속에 살게 하는데다, 죄를 더 이상은 악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가치롭고 선한 무엇으로 착각하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406. 어린양같이 생긴 짐승,13)

"교회 프리메이슨의 목표는 죄를 정당화하는 것, 죄를 더 이상은 악으로서가 아니라 선하고 가치있는 무엇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즉 인간 본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라고 부추겨 범죄케 함으로써 참회가 움틀 수 있는 양심의 뿌리를 파괴하고, 그런 죄에 대해서는 고해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온 교회에 두루 퍼져 있는 이 고약한 암의 악한 열매로서, 개인적인 고해가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다. 영혼들은 죄 상태에서 살게끔 이끌려지고, 그러니 예수께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생명'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죄의 모습은 대중전달 매체와 SNS를 통해 드러나고 확산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선거에서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상대 후보를 모욕하고 조롱하며, SNS에서는 상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글과 영상이 퍼져 나갑니다. 인공지능(AI)으로 상대 후보를 희화화하거나 실제로 하지 않은 행동을 한 것처럼 조작한 영상과 이미지까지 만들어집니다. 전쟁에서도 증오와 보복이 또 다른 폭력과 희생을 낳습니다. 다른 사람의 악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악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11)

"죄를 짓기 쉬운 기회도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는 너희 영혼 안에 순결과 은총의 빛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347. 이 빛나는 길,10)

"너희는 주변의 극심한 악 -- 너희가 사는 곳을 더럽히는 엄청난 불순결일랑은 쳐다보지도 말아라. 텔레비전 시청을 끊어버려라. 너희 영혼 안에 빛을 간직하기 위해서이고, 또 너희 생활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잠심과 묵상과 기도에 바치기 위해서이다."


(434. 나의 가장 위대한 승리,3)

"내 원수는 물질주의의 길, 쾌락과 돈에 대한 극심한 탐닉의 길, 이기주의와 교만과 불순결의 길로 나의 가련한 자녀들을 수없이 유인함으로써 이 땅을 아주 심하게 짓밟았다. 음행과 부도덕이 무엇보다도 인쇄물과 텔레비전을 통해 도처로 퍼져나가는 통에 어린이들과 단순한 이들의 영혼이 타락하고 있다."


우리는 죄를 짓기 쉬운 기회를 피해야 합니다. 대중전달 매체를 멀리하고, 특히 텔레비전과 영화 시청을 끊어야 합니다. 이러한 매체에서는 악한 사람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선한 사람까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러한 장면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악을 응징하기 위한 행동이라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눈으로 1권』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여종을 착취하는 여관 주인과 그의 악행에 분노하여 응징하려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다른 사람의 죄에 분노하여 응징하기보다, 그들이 회개하도록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1권』, 1996년 6월 23일 이야기 중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어린 하녀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나자렛의 예수님이시라는게 사실입니까?"


"그렇다." 나는 친절하게 대답하며 그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오, 주님. 저는 주님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갇힌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러 오셨다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주님, 저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저는 사마리아에 있는 식구들에게 돌아가고 싶은데, 제 가족이 이 여관 주인에게 빚을져서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여기서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가 싫습니다. 남자들이 제게 손을 대고 조롱합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주님. 제가 여기서 해야 하는 일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발 도와 주십시오. 그렇잖으면 전 죽을 것입니다." 어린 하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네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가 하기 싫은 짓을 강제로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람들이 너를 비천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이 너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오직 그들의 편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얘야, 외모뿐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운 너를 나는 참으로 사랑한다. 네가 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사람들이 강요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그러한 강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죄를 범하는 사람은 네가 아니다.


절망하지 말아라. 네가 죽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네가 죽으면 가족들에게 고통과 죄책감만 남겨 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들이 진 빚 때문에 네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며 가슴을 찢고 있는 가족에게 말이다.


너의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네가 아버지의 눈에서 읽었던 그 굴욕감은 너를 수치스럽게 생각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빚 때문에 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신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큰 눈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가슴을 움켜쥐고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아직도 저를 사랑하신다고요? 정말입니까, 주님?"


"그럼, 사랑하고 말고. 너도 아버지를 사랑해 드리고 용서해 드려야 한다."

 

그 아이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데, 여관 주인이 와서 고함을 질렀다. “야, 그만 울지 못해? 손님들한테 귀찮게 굴지말고 가서 일이나 해!"


"괜찮소. 이 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즐겁소."


"선생님, 저 계집아이는 쓸모가 없습니다. 게을러서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까 하고 궁리만 한다니까요." 여관 주인은 아이를 비난하는 투로 말했다.


"당신 딸이라면, 이 아이에게 강제로 시키는 그런 일을 하기 좋아하겠소?" 나는 그 주인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아, 아니오. 안 좋아하겠지요. 하지만 제 딸은 귀한 아이 입니다. 저 아이와는 다르다고요." 여관 주인은 어린 하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딸과 저 아이의 다른 점이 무엇인 것 같소?" 내가 되물었다.


"이 아이는 사마리아 족이고, 자기 아버지가 나한테 빚을 졌지요." 여관 주인이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그것 때문에 이 아이가 쓸모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 아이는 그 빛값으로 여기 온 것입니다. 저는 절대로 딸을 빚값으로 내놓지는 않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이 아이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겁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쓸모가 없었으면 아이 아버지가 내버렸겠습니까?" 그는 눈을 부릅뜨고 격렬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하면서 저를 내놓으라고 강요했잖아요." 어린 하녀가 부르짖었다.


"가만있지 못해!" 여관 주인은 아이를 때리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 됐어요! 애를 때리지 마시오. 빚이 얼마나 됩니까?" 내 말을 듣고 유다가 안색이 달라지며 안절부절 하기 시작했다.


"은전 10전입니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겨우 2전밖에 안 돼요."


"입닥치지 못해, 너 맞아볼래!" 여관 주인은 아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서 나에게 다시 흥정을 걸었다.


"어쨌든 이자도 내야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가슴 속에 가득 찬 탐욕, 분노, 암흑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당신은 왜 우는 겁니까? 이 아이가 그렇게 마음에 걸립니까?" 여관 주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불쌍해서 우는 겁니다. 슬픔과 암흑으로 가득찬 당신의 영혼을 보고 있기 때문이오. 질투와 분노로 당신이 죽인 사람을 보고 있고, 하느님 앞에 갔을 때 그 죗값으로 당신이 치러야 할 형벌을 보고 있는 것이오." 나는 그의 영혼을 슬퍼하며 말했다.


"맙소사!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내가 알 바 없지. 이 아이의 빚을 대신 내줄 거요? 말거요?"


"유다야, 돈을 지불해라."

 

여관 주인은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지만, 돈을 건네 주는 유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가족들한테 돌아가서 그들을 사랑해 주어라."

 

어린 하녀는 달려와서 내 목을 껴안고 이마에 입맞춤하면서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되풀이했다.

 

여관 주인은 돈을 세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돈을 내버리다니...."


"아니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영혼을 내버리다니요!"

 

그 아이는 짐을 챙겨들고 떠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말했다. "주님, 주님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나도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네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여라."

 

그 아이는 나에게 큰 절을 하고 기쁨의 눈물과 함께 시편을 노래하면서 떠나갔다.


"나가자. 나는 더 이상 여기 머무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식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아직도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 여관 주인이 말했다.


"나는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소."

 

우리는 회당으로 향했다. 바르톨로메오와 베드로가 내 곁에서 가고 있었는데, 바르톨로메오가 주막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님,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분별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그 사람은 자기의 행실이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베드로가 동의를 했다. "그 사람도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그 아이와 가족에게 한 짓이 나쁘다는 것과, 하느님의 법을 어기며 살고 있다는 것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그 아이를 때리려고 했을 때, 저는 마음에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주님께서 때리지 말라고 하셨을 때 그 사람이 손을 멈추지 않았다면 제가 그 사람을 때려 주었을 것입니다."


"너희들은 이제 죄가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 죄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다른 사람들의 죄가 너희들로 하여금 어떻게 죄를 짓게 하는지 알겠느냐? 그 가련한 사람은 영혼이 메말랐기 때문에, 그 메마른 영혼을 감추기 위해 죄를 범한다. 이전에는 자신의 악한 버릇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지만, 그 사람은 양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의 그런 죄책감을 억누르려고 하다 보니, 더 많은 죄를 자기 안에 받아 들이게 되었고, 마침내 양심이 마비되어 그 양심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사람을 인도해줄 양심이 마비되고 없어지면, 죄가 더 이상 악하게 보이지 않게 되는데, 그러면 점점 더 죄를 용납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죄가 일상의 일처럼 보이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기 때문에 별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약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그들을 이용하고 자기 종처럼 부려먹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죄악이다. 탐욕이 그의 가슴을 덮고, 자만이 그의 영혼에 가득 차 있어서, 악마가 곁에 서 있는데도 그 악마를 보지 못한다.


그것이 영적인 눈멀음이며, 육신적인 눈멀음보다 더 불쌍한 것이다. 육신적 눈멀음은 적어도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적으로 병든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병들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이러한 사람들의 안팎과 주위에 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사람들을 악의 소굴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좀전의 그 여관 주인 같은 사람을 보게 되면 분노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해 분개하거나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죄를 짓고서라도 그 사람의 죄악을 멈추게 하고 싶어 한다.... 폭행을 하거나, 증오심으로 학대하거나, 적개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등의 죄를 짓고서라도 그 사람의 죄악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속에 스며든 악으로 눈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 하는지를 모르고 행동할 때, 착한 사람들도 악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악마가 얼마나 속임수에 능한지를 분명히 알아 두어라.


그러기에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말하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간에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첫째로 앞세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끝내자 바르톨로메오가 감격해하며 말했다. "주님, 지금 하신 말씀은 정말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저도 그 여관 주인한테 화가 났고,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이제는, 영적으로 병든 그 사람이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 역시 그렇게 화를 낸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었어야 할 때, 저는 그 사람을 때리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주님!" 베드로가 뒤통수를 만지며 말했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오히려 악마가 너희를 어떻게 꾀어 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희가 불쌍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어진 것도 기뻐해야 할 일이다."

 


<베드로의 칼과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 말코스의 귀를 잘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라고 하시고, 말코스의 귀를 고쳐 주셨습니다.

 

(루카 22,49-51)

예수님 둘레에 있던 이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주님, 저희가 칼로 쳐 버릴까요?” 하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만해 두어라.” 하시고, 그 사람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다.


(요한 18,10-11)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셨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건은 악을 막으려는 마음이라도 분노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당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루카 23,34)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에 분노하여 응징하려 하기보다,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말코스의 귀를 자르는 베드로」 — 제라르 두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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